[단편소설] 풍상 風霜(3)
[단편소설] 풍상 風霜(3)
  • 성광일보
  • 승인 2022.10.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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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태/작가
조진태/작가

쓰러져 엎어진 엄마의 등을 안고 소리쳤다. 어린 것이 목구멍에서 한꺼번에 토해져 나오는 울음 소리는 넓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이 중위는 순간적으로 벌어진 사건으로 다음에 취하여야 할 행동에 대해 잠시 머뭇거렸다. 임충호의 말대로 그를 사살했어야만 했다. 그를 확인한 순간, 현상금 50만원과 그를 생포하겠다는 영웅심이 발동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중위는 당황했다. 설도훈이 사라진 땅 속으로 들어 가 그놈을 추적해 보려는 순간, 닫혔던 방바닥이 푹 꺼지면서 푹 솟아오르는 물체가 있었다. 바로 피투성이가 된 설도훈의 얼굴이었다.
뒤따라 임충호가 올라오고 이어 두 명의 전경도 함께 올라왔다.
설도훈의 싸늘한 시체는 세 사람에 의해 그의 처 옆에 끌어다 눕혔다.
어찌된 영문을 모른 이 중위는 당황해 임충호를 향해 다급하게 말했다.
“어찌 된 거야?”
“이 놈은 내 아버지를 총살한 원수에요.”
“원수?”
“그래요. 원수! 아버지를 좌익 가입을 거부한 구장(區長), 우익보수에다 백색테러 분자라는 허무맹랑한 구실로, 양식까지 탈취하고 집도 불사르고. 결국 살인까지.”
“그래서?”
“그래서 원수를 갚기 위해 10년이 넙게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노렸지요. 그러다  드디어 동굴을 통한 지하통로를 교묘히 이용해 제 집을 드나든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두 달 전이죠. 그래서 제삿날인 오늘 밤을 기다렸죠.”
“왜 생포하지 않았나?”
“꼭 내 손으로 죽여야 했기 때문이죠, 이 중위가 죽이지 않을 거란 것도 이미 알고 있었고요”
그 이상 더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희미한 30촉 전등 아래의 제사상 양 쪽의 촛불마저 간들거리는 데, 피투성이 된 엄마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어대는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만이 애처럽게 방안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설도훈의 유일한 핏줄인 경환이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은 후 겨울이 가고 한 해가 바뀌어 삼월이 되었다. 
이운하 선생이 사범학교를 갖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 첫 부임을 한 곳이 신당국민 학교였다. 
신당국민 학교는 작산 마을에서 시오리 가량 떨어진 신당면 소재지에 있었다. 
삼월 초에 부임해서 1학년을 맡았다. 
큰 도시에 나가면 한 두 명의 여교사가 있는 학교가 있었지만, 신당 같은 시골학교에는 여교사가 없었다. 그래서 손수건을 이름표와 함께 왼쪽 가슴에 꽤찬 코흘리개 어린이들을 남교사가 맡아 가르쳤다. 
삼월이 가고 녹음이 짙어가는 유월 어느 날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한 학급 학생 수가 불과 삼십 명 밖에 안 된 아이들을 데리고 양은 그릇 한 개에 놋숟가락 하나 씩을 든 아이들을 데리고 급식소 앞에서 배식을 하고 있었다. 
급식소래야 말이 급식소지, 블록벽에 함석 덮은 움막 안에 대형 솥 하나 걸어 놓고 운크라 원조 받은 옥수수 가루로 죽 끓어 주는 곳이 고작이었다. 
“이 아이도 죽 한 그릇 주이소 마!”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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