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과 연리지를 생각하며
만파식적과 연리지를 생각하며
  • 성광일보
  • 승인 2022.10.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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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한 몸으로 만나야 할 운명이라면 뿌리가 다르더라도 연리지처럼 가지가 서로 연결된다. 한곳으로 흘러야 할 숙명이라면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은 두물머리에서 만나게 된다. 외딴 섬들도 서럽도록 그리움이 쌓이면 연륙교를 통해 이어지게 된다. 외로이 반짝이는 별들도 사랑이 고프면 스스로 은하수를 건너고 오작교를 넘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단일민족이라 배워왔지만, 아직도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동서로 흩어져서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경제적으로 위기가 닥쳐오고 있어 마음이 만나야 하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하늘이 막히고 땅이 갈라지니 마음 까지 찢어져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는 만파식적의 신묘한 힘이라도 빌려와서 통합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근심 걱정 병마(病魔)를 떨쳐버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신라의 신적(神笛)으로 왕이 이 피리를 부니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하여 동해(東海)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하였는데,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쳐져 한 몸이 되었다.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대나무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났다. 왕이 이 신묘한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연리지(連理枝)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란다.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채옹(蔡邕 : 132~192)은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폈다. 그녀의 지극정성 효심에 감동하였는지 그녀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일러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 말한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시 ‘장한가(長恨歌)’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 ; 7월 7일 장생전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 ;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가 있건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 ; 이 한은 끝없이 계속되네)’. 위 시에서 비익조(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상상의 새)는 그리움, 애틋함, 사랑을 상징한다. 연리지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당나라 시인 노조린(盧照隣 : 637~689)의 시에 나오는 외눈박이 물고기인 비목어(比目魚)도 있다. 이 비목어는 태어날 때부터 눈 하나를 잃었으며, 자신처럼 눈 하나를 잃은 물고기를 만나 서로의 처지를 감싸고 의지하며 마치 두 눈을 가진 물고기처럼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간의 사랑을 강조할 때 하늘에는 비익조, 땅에는 연리지, 물속에는 비목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려면 자신의 짝을 찾아 원앙(鴛鴦)처럼 살아야 하는데 요즘에는 어떠한가?

연말이 다가오면서 다수가 모이는 행사가 많아지고 있다. 행사 뒤끝이 유쾌하게 끝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조그만 불씨가 바스락거리다 온 산을 불태우듯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싸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입을 다물면 조용히 지나갈 일이지만 서로 옳다고 큰소리치기 바쁘다.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면서 시작된 싱거운 말다툼이 나중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사람처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 서로를 이렇게 갈라놓을까? 그 작은 씨가 문제인 것이다. 다정한 ‘말씨’가 싸우자는 ‘말투’로 변하면 상대를 제압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솟는다. 핏대가 불룩거리고 삿대질이 상대방의 눈을 찌른다. 이럴 때 누군가가 만파식적의 피리를 불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더불어 잘살고자 하는 염원이 손끝에서라도 맞닿으면 결국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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