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풍상 風霜(4)
[단편소설] 풍상 風霜(4)
  • 성광일보
  • 승인 2022.11.0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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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태 작가
조진태 작가

이운하 선생이 마지막으로 기다리는 아이에게 옥수수 죽을 퍼주고 있을 때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죽 그릇을 손에 들린 꼬마의 잡은 손목을 내밀었다. 이운하 선생이 할머니와 아이를 번갈아 훑어 보고 있을 때 또 할머니가 말했다. 
“가마솥을 싹 훑으면 한 그릇은 늑근 안 하겄소. 그리 해 주이소 마. 그 정도면 이 녀석 쬐고만 배때기는 채울 것  같소 마.!”
이운하 선생은 할머니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가마솥 안을 싹 훑어 꼬마 아이의 죽 그릇에 부어 주며 말했다. 
“때마침 잘 왔네. 천천히 잘 먹어!”
아이들은 급식소 앞 맨흙 바닥에 퍼질러 앉아 옥수수 죽을 먹기 시작한다.
“할머니께선 이 학교 근방에 사시나요?”
“아니, 아니지. 저어기 칠평산 안뵈여! 저 산 발치에 있는 도밭에 살아. 여기서 시오리는 될끼구면.”
“그런데 오늘 여기를    ”
할머니는 서둘러 이운하 선생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며 급식소 모퉁이로 가서는 숨 가쁜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만 알고 계시소만, 실은 말이어. 저 놈이 작년 늦가을에 지 애비, 애미 총 맞아 죽고 어디 갈데 올데 있었건. 그래서 이 외할미가 데려왔지 않겠소. 그런데 나 역시 가난한 자식 내외 등짐 되어 사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소. 그래서 저 놈 점심 한 끼라도 때우고 싶어 일학년에 입학 시키려 왔소. 선상님 그래 주이소 마. 저 놈이 나이는 두 살이 적어 일학년 자격은 안 되지만 눈치 빠르고 영리해서 선상님 애 잡수시게는 안 할 끼요 마. 제발 부탁하요.”
백발의 허리 굽은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자꾸자꾸 비벼 가며 말했다. 
“아니! 그럼?”
“예, 예. 공산당인가, 빨갱인가 하다가 저 놈 조부모 제삿날 총 맞아 죽은 것 선상님도 아실끼요 마. 하지만 어찌겠소. 어린 것이야 무슨 죄가 있겠소. 저 놈이나 따나 먹여 살리야재.”
이운하 선생은 할머니의 절절한 호소와 천지도 모르고 자라는 어린이의 형편을 생각하노라니 명치 끝이 시큰해 오면서 목을 넘어오려는 그 무엇을 꼭 눌러 참고 말했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도밭에서 여기까지 다니기는 너무 먼데요?”
“그건 염려 마이소. 내가 날마다 데려오고 데려 갈테니께요.”
“아. 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저 따라 오십시오.”
이운하 선생은 다시 아이들에게로 돌아와 그 동안 옥분 죽을 다 먹고 기다리는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할머니와 꼬마 녀석을 데리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뿔테 안경을 쓰고 서류를 들쳐보고 있던 나이 많아 보이는 교장은 고개를 들어 이운하 선생 일행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이운하 선생은 할머니의 의향을 자세히 전하고 입학할 수 있도록 권의를 했다.
교장은 집무를 보던 책상 앞에 그대로 앉힌채  말했다.
'참으로 딱한 처지로군'하고 혼자 중얼거리듯 말한 후 꼬마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지?”
“설경환입니더.”
“응, 그래. 나이는 몇 살이지?”
“예, 6 살입니더.”
“집이 도밭이라면 꽤 거리가 먼데 학교에 다닐 수 있겠니?”
“얼마든지 다닐 수 있습니더 예.”
“그 녀석 똑똑 하군. 좋다! 입학을 시켜 줄 테니 공부 열심히 하여라.결석도 하지 말고.”
“에,예. 결석도 안 할 김니더 예”
교장은 이운하 선생에게 당부했다;
“힘 드시겠지만 잘 보살펴 주시오.”
이렇게 해서 설경환은 이운하 선생 반에서 적령이 못된 덤으로 학생이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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