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말이 잠든 망령을 깨운다
가짜 말이 잠든 망령을 깨운다
  • 성광일보
  • 승인 2022.11.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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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천고마비(天高馬肥), 말이 살찌는 계절에 영혼 없는 껍데기 같은 말도 함께 살이 찌는 시절인가 보다. 허언이 난무하니 검불도 날뛰고, 막말도 고개를 쳐든다. 가짜 말은 살이 찔수록 먹음직스럽다. 막말이나 가짜 말을 걸러내는 깔때기 장치가 없으면 진실만을 믿고 사는 대다수 사람은 늑대들의 잔인한 공격을 막아낼 수가 없다.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가 바스락거리며 온 산을 불태우는 것처럼, 가짜 말 한마디는 분노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다. 석 달 열흘 장마에도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다.

고급술은 익을수록 향기가 짙어지고 전통 된장은 오래 묵혀둘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낟알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는데 지금 너른 들판을 바라보면 온통 굽은 새우등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품이 높은 사람은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겸손해진다. 전봇대에 걸린 가로등마저 땅바닥을 향해 눈을 뜨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겸손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산을 보면 오르고 싶고, 강을 보면 건너고 싶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마실 것을 찾는다. 재미난 일은 날을 새면서도 더 하고 싶지만, 몸이 피곤하면 누울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서 거짓말을 재미 삼아 하다 보면 사기꾼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는 거짓말 고수가 된다. 거짓이 거짓을 낳으면 결국 그 거짓으로 망하게 된다. 무심코 던진 가짜 말, 그냥 해본 말이라도 무죄라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무자비한 언어폭력인 것이다.

나에겐 기쁨이 되는 것이 너에겐 슬픔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욕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욕을 ‘호칭의 욕’, ‘묘사의 욕’, ‘비난의 욕’ 그리고 ‘의지의 욕’으로 구분하였다. 호칭의 욕은 상대를 직접 거론하면서 흠집을 내는 말이고, 묘사의 욕은 구체적인 약점을 극대화해서 하는 말이고, 비난의 욕은 저주하는 말이고, 의지의 욕은 흔히 악담에 해당하는 말이라 풀이했다. 이 좋은 가을날에 말(馬)이 살찐다고 욕설도 살이 찌면 곤란하지 않을까? 말할 줄 아는 입 달린 사람이라면서 어찌하여 말 못 하는 짐승과 겨루려 하는가.

꽃이 피면 벌 나비 다가오고 꽃이 지면 떠나가는 것을 어찌 야박하다 탓할 것인가? 바람이 불면 눕는 자 있을 것이고 그것을 깃대고 서는 자도 있을 것이다. 시멘트 가루는 바람을 좋아하지 않지만, 돛이나 연은 바람을 찾는다. 같은 바람이어도 좋아하는 쪽과 좋아하지 않는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바람을 뚫고 가야 하는 사람과 등지고 걸어가는 사람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자연의 이치도 이러할진 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른 생각 다른 마음을 오로지 하나여야 한다고 외친다. 너는 내 편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도 무조건 좋아해야 한다고 우긴다. 내가 한 말은 거짓이어도 진실인 양 믿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크게 벗어난 것이다.

자석은 같은 극이면 서로 밀어낸다. 똑같은 사람들이 붙어있으면 강해지지 않는다. 칡넝쿨이나 등나무는 꼬일 대로 꼬이면서 하늘 높이 잘도 오르던데, 사람들은 마음이 꼬이면 올라가는 사람 끌어내리고 앞서가는 사람 뒷다리 걸고 넘어뜨리려 한다.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우리 사회는 어린아이의 재채기에도 쓰러질 것이다. 제비들의 검불 잡아당기는 힘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내 편만으로는 짱짱한 새끼줄을 꼴 수 없음이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 방아쇠 풀린 용수철이 번쩍 튀어 오르듯 화들짝 깨어나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다. 잠자는 막걸리의 트림 본능을 흔들면 어떠한가? 잠 깬 트림은 고래등에서 뿜어내는 물기둥처럼 연신 해수면 위로 솟아오른다. 향 짙은 로즈메리가 아니기에 트림 한방으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코를 틀어막는다. 한번 시작한 트림은 붕알 달린 시계추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듯 쉬이 멈추질 않는다. 썩은 냄새 진동하는 쓰레기 같은 말, 입 밖으로 한 번 나오니 이제는 너도나도 걷잡을 수 없이 쏟아낸다. 쓰레기통을 온통 뒤집어 놓고 툭툭 차고 있는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자신은 거짓을 말하면서 다른 사람은 진실하지 않다고 화를 낸다. 어쩌면 우리는 볼 것 다 보고서 한 눈으로만 봤다고 반값으로 깎아달라 억지 부리는 그런 사람을 시나브로 닮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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