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
[청년칼럼]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
  • 임태경 기자
  • 승인 2022.11.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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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경 / 취재기자
임태경

최근 들어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는 종종 협상과 설득, 유혹의 기술에 대한 책들이 올라온다. 대다수의 커뮤니케이션 서적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인용한다. 상대방과의 유대감을 쌓는 기술인 '에토스',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는 기술인 '로고스',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하는 기술인 '파토스'가 서적들의 많은 페이지를 차지한다. 좀 더 현대적인 커뮤니케이션 서적들은 FBI나 픽업아티스트들의 대화법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미러링과 데피니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따라하는 '미러링'을 기반으로 상대방과의 공감과 유대감을 얻고, 상대방의 불명확한 개념과 주장을 적절하게 정의해주는 '데피니션'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서적들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테크닉을 다룰 뿐,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과 의지, 진정성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의심과 불신, 진정성을 가장한 목적의식이 드리울 때가 많다. 냉소와 조롱의 얼굴은 에토스와 로고스, 파토스로도 완벽하게 화장하기 어렵고, 미러링과 데피니션으로 얻을 수 있는 순간의 환심은 싸구려 향수냄새처럼 금방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세련된 수사학보다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나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오픈애티튜드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내가 어릴 적 학창 시절 J사의 스피치수업으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독자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일화를 풀어보려 한다. 

그해 겨울은 너무 추웠다. 자신감은 밑바닥을 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무너진 마음을 터놓고 만날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어깨가 축 쳐진채로 책만 읽고 있는 내게 엄마는 수강증 하나를 툭하고 내밀었다. 그것은 J사의 스피킹수업 등록증이었다. 10주 완성코스로 매주 수요일밤을 3달이나 꼬박 나가야만 수료가 되는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일말의 상의도 없이 수강증부터 끊어버린 엄마에게 얼마간 원망의 눈초리를 쏘아붙였지만, 아들의 자신감충전을 위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는 엄마의 뻔뻔한 생색에 나는 하릴없이 스피치수업을 나가야만 했다.

스피치수업 입성 첫날. 이 수업이 내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닥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식스센스만큼이나 소름끼치는 반전이었다. 수업 10분전. 한 남자가 두리번거리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더벅머리에 도수가 높은 큰 안경을 쓰고 체크무늬남방을 목 위 마지막 단추까지 끼워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종이컵에 타온 믹스커피를 커피봉지로 휘휘 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마말씀 자잘 모모못하셔셔 오오셨죠.

이 말투는 뭘까,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얼떨결에 남자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남자는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다는듯 가볍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커피봉지를 건져 입으로 쪽쪽 빨더니 휘휘 저은 뜨거운 커피를 그대로 원샷했다. 

남자와 함께 옆에 앉아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엄청난 불만을 쏟아내었다. 등록할 때 수업내용은 확인했느냐. 이 수업은 스피치강의를 빙자한 인격개조수업이지 않느냐. 이 수업은 말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테크닉강의가 아니라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에게 말문을 트이게 해주는 재활요법이지 않느냐. 엄마는 나를 환자로 생각하느냐. 엄마는 환불이 안된다며 나의 등을 다시 떠밀었고 다음 수업 때 나는 학원에 어쩔 수 없이 앉아 전날 만났던 체크무늬남방짝꿍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는 여전히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말을 하면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썹이 치켜올라갈 때가 있었지만 대화하면서 알고 보니 체크무늬남방 형은 굉장히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는 스피치수업이 시작할때면 누구보다 큰 소리로 표어를 외쳤고 수업내용을 메시아의 말씀처럼 빽빽히 받아적곤 했는데, 나중에는 클래스의 조편성과 회식을 담당하는 반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엄마랑 투쟁 후 학원을 그만뒀었지만 몇 주 뒤 체크무늬남방 형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다. 문자에는 큰 이미지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J사 주관 스피치대회 최우수상 주기훈. 강사옆에서 봉황이 그려진 상장을 들고 형은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투박한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목위까지 단추를 답답하게 꼬옥 채운 채. 형은 실습까지 수업과정을 모두 수료하고 마지막 스피치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했다. 형은 무척이나 이 사진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담아 축하한다고 그에게 긴 답장을 보냈다. 마지막 수업에서 형의 스피치를 보지 못한 것은 지금도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스피치학원에서 시켰던 것처럼 지하철에서 볼펜을 파는 것은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내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말을 더듬는 누군가가 불쑥 말을 걸어왔을 때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친절히 대답해 줄 준비가 되어있다. 누군가가 한발짝 다가온다면 목 위까지 꼬옥 채웠던 의심과 불안의 단추를 하나 정도는 풀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누군가를 마음에 담을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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