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
[수필]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
  • 성광일보
  • 승인 2022.12.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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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라
수필가, 성동문학이사
황미라

내가 사는 아파트 서쪽은 성근 울타리를 경계로 저편은 공원이다. 조성된 지 20년이 지나 제법 숲이 울창하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 공원은 동네 사람들의 쉼터이자 운동장이다. 공원 가장자리를 한 바퀴 빙 둘러 만든 1.2km 조깅트랙은 마주 선 나뭇가지들이 서로 만나 터널이 되었다. 

새싹이 돋고, 무성한 푸르름으로 성장하고,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가지마다 하얀 손님이 내려앉아도 트랙에는 늘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트랙 외에도 게이트볼장, 테니스장, 풋볼장 등 다양한 운동시설이 있다. 나들이객도 제법 있다. 나는 허공을 채우는 아이들 소리를 좋아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어 여행은 물론이고 지인을 만나기 어려울 때 큰 위안이 되었던 곳도 이 공원이다.
봄마다 봄맞이꽃, 꽃말이, 주름잎, 제비꽃, 꽃다지, 냉이 등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핀다. 나태주 시인의 시구절처럼 정말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꽃들이다. 봄이 시작되면 나는 차오르는 호기심으로 온 공원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위치에서 어떤 나무가 있는지, 그 나무에는 언제 꽃이 피는지, 땅에는 또 어떤 풀꽃이 피어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따스한 봄 햇살 받아 더욱 노래진 꽃다지 군락에는 설렘이 반짝인다. 공원은 매년 어떤 공간도 빈틈없는 아름다운 조화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조화가 점점 깨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참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를 절개, 지조에 비유하며 찬양하는 시들도 많다.《논어》의〈자한〉편에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위리안치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고 물심양면 자신을 도와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세한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애국가 가사에는 바람서리에도 불변하는 소나무를 우리 기상이라고 한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곧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뻗어있는 한 그루 소나무는 우리가 경외감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한겨울 무거운 눈을 가느다란 가지와 잎으로 꿋꿋이 받치고 서 있는 소나무에는 의연함이 있다. 

소나무가 자라는 곳에는 마치 내 손등에 울룩불룩 올라온 실핏줄 같은 뿌리를 볼 수 있다. 울퉁불퉁 땅표면 위로 올라온 뿌리는 옆으로 기어가듯 뻗어 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봄이 와도 새싹이 돋지 않는다. 처음에는 흙이나 물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영양분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타감작용을 알게 되었다. 

타감작용은 다른 식물의 발아와 생육에 영향을 미치는 생화학적 상호반응인데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성장을 억제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이런 내용으로 보면 소나무 주변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이유에는 타감작용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힘이 활동하고 있다. 솔잎은 산성이 강해서 특정한 작물 빼고는 거의 퇴비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 만큼 뿌리는 점점 옆으로 세력을 뻗치며 자신만이 생존할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갈색 솔잎만이 외로운 영역을 채운다. 

숲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나름대로 질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봄이 돌아왔다고 숲속 모든 식물이 동시에 싹이 돋는 것이 아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자라는 식물부터 시작하여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싹을 틔우고 성장한다. 그래야 모든 식물이 고루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다. 숲은 서로 배려하고 공생하며 이루어진 것이다. 소나무 숲 아래는 광합성을 해야 하는 식물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최근에 본 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라고 한다. 그 이유로 일반 국민은 경관적·환경적 가치를, 전문가는 역사·문화적 ·경관적 가치를 꼽았다고 한다.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소나무에 대한 생태를 조금 알게 된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한다. 소나무는 자애롭지 않다. 소나무는 강력한 뿌리를 사방으로 뻗으며 아주 강력한 힘을 과시한다. 주변과 어우렁더우렁 하지 못하고 독식으로 생존한다. 이런 소나무를 독야청청에 비유하고 우리 기상이라며 칭송하는 것이 맞는 걸까. 소나무의 생태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내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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