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음이다
여행은 이음이다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3.01.19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여행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낯선 기(氣)를 채우려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추억을 더 채우려는 것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벗어 버리고 일순간의 짜릿함을 찾아 오작교를 건너는 것이다. 남아 있는 기억이 많아야 추억을 되새김할 것 아닌가. 핸드폰 배터리에도 최소한의 눈금이 남아 있어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처럼.

며칠 전 오관산악회 친구들과 이음 열차에 몸을 맡겼었다. 여행과 이음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서 별들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 무거운 잠을 꾸역꾸역 밀어냈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음 열차인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이음 열차인가? 마음과 마을을 이어주는 이음 열차인가? 흔들거리며 둥둥 떠 있는 머리로 ‘내 입맛과 네 입맛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결론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

내 옆 좌석에는 졸음을 한 짐 지고 가는 승객 한 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내려야 하는 역을 한참이나 지나치고 있었다. 다른 승객이 찾아와서 그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를 두드리고서야 비로소 내릴 역을 지나쳤음을 알아차렸다. 다음 역에서 내리면 돌아가는 차편은 있는지, 어느 역까지 가면 되돌아가기가 수월한지, 기차 삯은 얼마를 더 부담해야 하는지 등등. 차표 점검 나온 승무원 아가씨에게 열심히 물었다. 그러다 다음 역에서 서둘러 내렸다. 그 중년의 아저씨는 내가 지금 닮아가고 있는 나의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가 동굴 속을 들어갔다 나오면 귀가 아프다고 멍멍멍 덜커덩거린다. 친구들이 큰 소리로 말을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개미허리보다 가늘다. 가는 귀를 먹어가는 건지 소리가 늙어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귓구멍이 좁아지고 있음을 탓해 무엇하랴!

겨울바람 이기려 칭칭 동여맨 등산화, 전깃줄에 꽁꽁 둘러싸인 채 추위에 떨고 있는 굽 낮은 꽃나무를 닮았다. 바람이 지나가기 전에 끈을 풀어주라 몸짓한다. 답답한 가슴 시원하게 확 풀어주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신발 끈은 그 전깃줄을 닮아있다. 함께 걷고 있는 여덟 명 친구들의 얼굴도 닮아가고 있다. 그들의 들뜬 목소리도 한갓진 마음도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조금 후에 먹을 소고기 생각에 침을 흘리는 것도 닮아가고 있음이다.

줄줄이 사탕으로 매달려있는 붕알등(燈), 앵두보다 작은 것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본다. 혹여 드러누워 있는 꽃나무가 얼어 죽을까 발을 동동거린다. 세찬 바람이 뺨을 한 대 때리니 빛 방울이 절레절레 흔들거린다. 시소를 타는 듯 그네를 타는 듯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어린애들이 줄넘기하는 듯 전깃줄은 돌리고 몸뚱이는 뛰면서 지칠 때까지 뛰려는가 보다. 달님과 함께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이들은 오뚜기 인생이란 말인가?

갑자기 ‘영주골 여인’(작사 : 송란교)을 떠올려 본다.

뉘엿 뉘엿 해질 무렵/청량리역 돌고 돌아/떠난 님 찾으러/이음 열차에/지친 몸을 실었다. //

영주 영주 대박 시장/빈자리를 찾아 돌아/찡겨서 한 숟갈/멀어진 마음/영주에서 이었다. //

아 ~ 아 ~ / 해맑은 인연이여/영영 잊을 수 없는 여인/맛있는 영주의 밤이여 //

꼭두새벽, 동녘에서 솟아오른 해를 보고 마중 인사를 하고, 서녘에서 드러눕는 달을 보고 배웅 인사를 했다. 영주역에서 철암역까지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차역 맞이방에는 사람들이 수북하다.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친구들은 분천역에서 내려 트레킹을 하며 낙동강 발원지 부근을 맛보려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길이 봉쇄되었다는 안내표지판을 본 우리 일행은 어리둥절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길이 봉쇄되다니, 봉쇄인지 폐쇄인지 알 수 없지만 1년 동안은 걸을 수 없는 길이 되었다. 멋쩍고 아쉽다.

눈 덮인 철길, 협곡 속의 하늘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갈림 앞의 철길 따라 마음도 그렇다. 구불구불 따라오는 강물도 지루하지 않게 길동무를 해준다. 봄볕이 그리워 우는 춘양(春陽)에서 억지 춘향도 만났다. 서리꽃이 무너질까 봐 안절부절 인사도 못 하는 솔잎들, 봉화의 눈꽃들은 햇살에 녹아 질펀한 길을 수놓고 있다. 한양 만리 그리움은 재가 되어 구름으로 날아오른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허기가 진다. 고추가 매운가 바람이 매운가? 그 여인의 손맛이 매운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