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 詩마당] 암벽등반가 K에게
[성동 詩마당] 암벽등반가 K에게
  • 성광일보
  • 승인 2023.01.3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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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태
시인, 성동문학 회원

파도가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슬픔이 이승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그리움이 사랑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에게서 들은 적 있다 그의 이력을 눈치챈 누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어느새 그는 먼 산정 위 전신주로 서 있었다 

오르고 또 내리는 동안 그의 청춘은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부서져 내린 모래알을 모아 거대한 부처를 만드느라 주말마다 단단한 절벽을 기어올랐다 심산의 기도처를 찾는 수도자처럼 수시로 기어올랐다 집채만 한 돌의 둔감함을 견디며 돌담의 층계를 맨발로 더듬었다 결국 올라간 그 끝에서 투명한 실오라기를 붙잡은 거미처럼 빙글 흔들리다 다시 사뿐한 하강을 준비하였다

아, 눈부신 회벽은 돌아가고픈 고요한 자궁의 점막이었을까 부수고 싶은 병든 관다발이었을까 이러저러한 질문들을 떠올리던 그는 밧줄 쥔 손을 슬쩍 놓아 보기도 하였다 절 잃고 떠도는 반가사유상처럼 해를 향해 엄지를 펴며 잠시 입정(入定)에 들어간 듯해 보였다

오랜 세월 부서져 내려 더 작아질 데 없었던 그,
오랜 세월 혼자여서 더 고독할 수 없었던 그,
오랜 세월 가난하여 더 잃을 것 없었던 그,

단단한 절벽 사이 파도를 헤치며
구름다리 출렁이는 바람을 견디며
하늘나라 향한 숲의 숨결을 품으며

그 마른 근육이 허공 속에 먼지 폭풍을 일으켰다

김 종 태
시인, 성동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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