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도서관 수필] 기찻길에서 옷을 말리고
[구립 도서관 수필] 기찻길에서 옷을 말리고
  • 성광일보
  • 승인 2023.03.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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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자(도영)
성동문인협회 회원

<성동글향기 구립도서관 은빛문단>

송방자(도영)<br>
송방자(도영)

어릴 때 우리가 살던 집은 차가 다니는 큰길가였지만 그 당시엔 차는 별로 안 다니고 키가 하늘로 뻗친 듯 큰사람은 소련군, 까만 옷 입고 제자리걸음으로 뛰는 사람은 중국군, 인민군 옷은 진갈색 옷으로 기억되는데 체격이 제일 작았다. 

소리 지르는 것도 각각 달랐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아버지는 그럴 때는 밖을 못 나가게 했지만, 상점 문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안에서도 봐도 되는데 호기심에 꼭 문을 열고 나가서 보았다. 

버스는 본 기억이 없고 어쩌다 한 번씩 자그마한 까만 차 혹은, 진한 갈색으로 기억되는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차 크기보다 더 많이 일어나서 차의 형체는 안 보이고 소리만 요란했다. 

집 옆 긴 마을 골목길을 내려가면 기찻길 건너서 보이는 바다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 있다. 너무 어릴 때라 살던 곳 명칭을 쓸 수 없어서 아쉽지만, 동네와 집은 지금도 선하게 보여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4살 위인 언니는 재주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들어오는 물 광경이 신기했던 어린 시절 우리가 어릴 때는 밀물 썰물이란 걸 몰라서 마을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파란 바닷물이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양으로 멀리 사라지고 거무스레한 끝이 보이지 않던 땅이 보이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군데군데 고여 있는 웅덩이 물은 햇빛에 반사되어 길고 짧은 빛이 반짝거리며 하늘로 오르는 듯 신기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집에서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나를 데리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신기한 장면을 자주 보러 다녔다.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가려고 내 손을 끌다시피 손을 잡고 달려갔다.

언니와 아이들은 바닷물이 나가고 갯벌이 멀리까지 보일 때는 그곳을 우리 놀이터로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어른들이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맨 뒷모습은 마치 둥그런 또아리를 매단 모양이었다. 까만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아주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던 모습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한결같이 똑같았던 모습들이다. 

지금처럼 옷들이 다양하게 나올 때가 아니어서 옷 입은 모습이 그랬을 거라 생각 든다. 올망졸망 아이들도 어른들한테 뒤질세라 앞지르며 달려가는 무리에 빨리 못 가는 동생을 끌며 뒤따라가던 기억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꼬부라진 쇠꼬챙이와 호미로 바위 위에서 콕콕 찍어서 굴을 캐내고 바지락을 줍기도 하는 뒤를 따라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가끔 굴을 우리 입에 넣어주는 인심 좋은 어른들도 있었다. 짭짜름하며 입안에 단맛 돌며 침이 고이던 기억, 군데군데 자그만 바위틈 사이에 고인 물속에는 쬐그만 게들이 기어가는 모습도 신기했지만 잡아 볼 생각은 할 줄 몰랐다. 아이들은 첨벙거리며 소리 지르고 다녔다.

뒷맛이 달짝지근했던 살아있는 굴 맛이 지금도 혀에 감돈다. 굴 나오는 철이면 비싸도 멈칫거리다 꼭, 한 번이라도 사는 버릇이 있다. 혹은 주워 먹기도 하는 재미에 언니는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잘박거리는 갯벌을 헤매고 다녔다. 

물 들어오는 시간을 모르는 언니는 사람들이 빠른 걸음걸이로 나가며 빨리 가자고 해도 언니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궁금하다. 언니는 얼른 나가지 않았다.

멀리서 허옇게 물이 보이기 시작할 때 “저기 물 온다!”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뛰어나와도 물살은 소리 없이 따라와 발바닥을 적셨다가 뒤로 밀려가곤 했다.

넓고 깊은 개울을 넘어가야 갯벌을 나올 수 있었던 바닷물도 물길이 있다는 사실을 우린 그때 알았다. 물이 소리 없이 개울로 들어올 때 어린 나는 걸어 나 올 수 없었다. 언니는 나를 업고, 깊고 널찍한 물길 속으로 걸어서 건너편으로 빠져나갔다. 어린 생각에도 물이 빠르게 밀려온다는 것을 언니 등에 업혀서 생각했다. 소리 없이 물이 빠르게 밀려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 생각나면 아찔한 생각이 든다. 순식간에 둘의 머리 위까지 차오른 물, 갯벌로 올라와서 뒤돌아볼 생각도 못 하고 길 위까지 뛰어가서 뒤돌아보니 금방 동네까지 밀려와 집들이 물에 잠길 것 같았던 바닷물, 그래도 언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그 말을 하하 우스갯소리로 하면 “너는 나 아니면 그때 바다로 떠내려갔어.” 하며 “내가 너를 살렸지.”하며 곧잘 우스갯소릴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무서운 생각이 드는 행동을 과감히 해내는 언니가 너무 똑똑하단 생각을 했다. 물살이 빠르게 밀려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언니는 꼭 잡아 꼭 잡아 소리를 하며 나를 업고 물길을 걸어 나왔던 생각 하면 무서운 일이었지만 두고두고 우리의 추억이 되었다.

가끔 바닷가를 여행 갈 때는 꼭 그 말을 빼놓지 않았다. 살아 나온 것이 다행이었지만 우린 어른이 된 다음에도 바다를 좋아해서 시간의 여유만 있으면 아무 바닷가나 여행 가기를 좋아했다. 그때의 말을 하고 또 하고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하다거나 싫지 않은 우리의 일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우리 자매들만의 옛이야기는 평생의 추억 속의, 추억으로 남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당시 하루에 몇 번 안 다니는 기찻길은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곤 했다. 한낮처럼 철길은 손바닥이 뜨겁진 않았지만, 자갈과 철길은 따스했다. 놀기도 좋았고 젖은 옷을 팬티 먼저 양손으로 비틀어 짜도 젖어있었지만 따듯해지면 입혀주고 치마는 잘 따듯해지질 않았지만 해가 많이 기울어져서 춥다고 언니를 졸라대면 그냥 입혀주었다. 

우리 집은 양복점을 하고 있어서 아버지는 양복 제단하고 남는 조각 천으로 우리 주름치마 등을 해주셔서 한복을 입어 본 기억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양복 옷감으로 팬티를 했으니 잘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언니도 몰랐다 했다. 그땐 '빤쓰'라 했는데 집에서 다 만들어 입었다. 

요즈음처럼 옷감이 여러 종류가 아니어서 속옷 천이 두꺼워서 잘 마를 리 없었지만, 언니는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리며 엄마가 바닷물에 들어가지 말고 짠물에 머리를 감지 말라고 했다며 연신 내 머리를 젖은 치마로 비벼주며 엄마가 했던 말을 중얼거렸다. 눅눅한 옷을 입고 집으로 갔지만 엄마는 바닷물에 젖은 옷도 짠물에 젖은 머리카락도 용케도 알아맞힌 일을 말하며 엄마가 귀신같이 알아맞혔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지금은 여든이 훌쩍 넘긴 나이에 현재의 기억을 잃어가고 있어도 어릴 적 일들을 말하며 “생각나니?”하며 묻곤 했다. “언니 당연히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 동생에게 젖은 옷을 말려 입혀줄 정도로 영리하고 당차게 야무졌던 언니는 지금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내 마음이 쓰리고 따가울 정도로 아프지만 내 힘으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실오라기 길게 늘어지듯 부디 그 기억만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지만 하루에 몇 번씩 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일, 우리 자매의 어렸을 적 추억만이라도 언니의 머릿속에서 머물러 있어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맞힌다는 이 이야기를 파도가 밀려올 수 있듯 끝없이 들을 수 있을까 기차가 지나가면 다시 또 오는 기차처럼 언니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그런 이야기를 하기를 바라는 것은 두 동생의 꿈일 뿐, 도움을 줄 수도 받지도 못하게 되어있는 모습에 마음만 미어지게 아프다. 어릴 때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점점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 하던 말도 잊어버리고 어린아이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언니가 이 글을 읽어주고 또 웃으며 너는 내가 살렸다고 큰소리 들을 수 있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특별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아온 큰딸, 자주 가 볼 수도 없는 요양원이 웬 말인가! 이렇게 망각상태로 가고 있는 세월이 인생이란 말인가.
형제들이 살아온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가슴에 품고 머릿속에 들어앉아 머리카락 올 올이 흘러 양어깨 위로 차곡차곡 내려앉는 자매의 많고 많은 사연은 흐르는 물 따라가지 말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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