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립 도서관 수필] 까마귀
[구립 도서관 수필] 까마귀
  • 성광일보
  • 승인 2023.03.14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희
성동문인협회 이사

<성동글향기 구립도서관 은빛문단>

이명희

초여름은 장미의 향연이다. 대현산에도 이때에는 온갖 장미들이 한껏 자태를 뽐낸다. 빨강, 노랑. 분홍에 크고 작은 모양들이 저마다의 표정으로 향기를 뽐낸다. 장미에 홀려 조금 과하다 싶은 운동을 했지만, 기분이 좋아서 걸음도 사뿐사뿐 집으로 오고 있었다. 까악까악 까마귀 두 마리가 머리 위에서 날고 있다. 대개 다른 새들이라면 사람이 가까이 가면 날아가게 마련인데 더 기세를 부리며 접근하지 말라고 엄포를 하고 있다. 왜 그러지? 섬뜩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봄에 결혼하고 그해 여름이었다. 결혼 전에 남편은 서울에서 가게를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징집을 받았단다. 돈을 조금 쓰면 면제해 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마음이 솔깃해져서 군대 기피자라는 엄청난 큰일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돈만 사기당한 남편은 경찰만 보면 지레 겁을 먹고 피해 다니느라 힘들어했다. 그래서 다시 영장이 나오면 입영한다고 시골 생활을 하기로 했다. 

시댁은 동네 한가운데에 있다. 그날도 저녁에 멍석을 깔고 나가 있으려니 이웃 서너 명이 모여 농사 얘기며 집안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헤어졌다. 막 잠이 들려는데 안방에서 시어머니가 빨리 와봐 아버지가 이상해 그래서 건너가니 시아버지가 의식이 없으신 채로 누워 계셨다. 제발 일어나시기를 빌고 또 빌며 시누이랑 이웃에 사는 큰아버지를 모시러 가는데 마당가에서 푸드덕 검은 새들이 날아올랐다. 급한 상황이라 무서운 줄도 몰랐다. 결국 아버지는 손도 못 써보고 운명하셨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나의 처신이 무척이나 불편하고 몸 둘 바를 몰랐다. 큰일을 치르고 나서 시누이 얘기가 큰아버지 모시러 가는데 앞에서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가서 불길한 생각이 확 들면서 못 일어나실 줄 알았단다. 

몇 년 전이다. 새벽에 현관문을 여는데 전봇대에서 까마귀가 날 쳐다보고 까악까악 우는 것이다. 순간 예전의 불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펑 하며 전기가 나갔다. 수족관 여과기를 타고 물이 흘러 누전이 된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딸이 결혼한 지 9년이 되어도 아이를 갖지 않고 있었다. 낳기만 하면 엄마가 유아 교육과를 나왔으니 유치원 교사는 못 했지만, 손주만큼은 잘 키워 주마고 살살 달래 첫아이를 낳았다. 손녀가 태어나고 백일 만에 살림을 합쳤다. 좁지 않은 집이었는데도 두 살림이 합쳐지니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김치냉장고, 안마의자 자전거 등 너무나 많은 살림살이 때문에 전기공사를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조금 더 쓸 수 있는 물건들이었는데, 전자 제품이 모두 고장이 나서 AS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모두 버린 일도 있었다.

순간에 이런 여러 가지 불안했던 기억이 지나갔다. 그런데 내가 오는 길옆 나뭇가지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가지도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아하! 어미 새가 새끼에게 날아다니는 연습을 시키는구나하고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까마귀가 어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했다. 꺼칠한 털이 고르지도 못하고 한없이 추레했다.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날아가지를 않는다. 머리 위의 까마귀는 비잉빙 돌며 더욱 사납게 울어 댔다. 그제야 이것이 반포지효 反哺之孝란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는 부모가 먹이를 찾지 못하게 늙으면 자식이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더니 그런 그것으로 보였다. 

오면서 자꾸 뒤돌아보았다. 먹이를 물어다 주는 건 못 봤지만 보호하고 있는 것임은 분명하여 보였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걱정하는 듯했다. 어미의 수명이 다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가 싶게 느껴졌다. 하찮게 여겼던 저 새들도 마지막을 대하는 데는 우리와 같은 마음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이 부끄러웠다. 흉조라고 치부해 버렸던 내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까마귀가 흉조라는 것은 중국과 우리나라만 그렇지 일본은 나쁜 일이 일어나기 전 미리 알려 준다고 길조라고 반긴단다. 새 중에서 까마귀의 아이큐가 무척 높다는 글을 본 생각이 났다. 웅덩이에 물이 깊어 주둥이가 안 닿으면 돌을 넣어 물을 먹는 지혜를 가졌단다. 그렇게 총명하여 앞일까지 내다보는 건 아닐까?

예전에 시골에서는 까마귀는 골 깊은 산속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동네 뒷산까지 와서 까악까악 울면 어른들이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며 걱정들을 했다. 그런 걸 듣고 자라 어느새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이 굳어졌나 보다. 까마귀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 까맣다는 이유만으로 흉조라 이름 불리는 것이 까마귀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내내 까마귀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저런 새들도 부모은공을 갚을 줄 아는데 나는 내 자식들 키운답시고 정작 낳아준 부모에게 소홀했던 많은 일을 돌아본다. 바쁘게 사는 딸에게 누가 될까? 하룻밤을 안주무시고 가는 부모를 당연시했던 지난날을 무척이나 후회한 적도 많다. 그런 나보다 까마귀가 더 나아 보였다. 앞으로는 까마귀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 보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까마귀가 집 앞 전봇대에 와서 울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검고 예쁘지 않은 겉모습만으로 내게 직접 해를 가하지도 않았는데 좋지 않게 여겼던 생각을 바꾸어 보려 한다. 오늘 본 장미꽃도 예쁘고 좋은 향기에 취해 다가가면 가시 돋음을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겠다. 오늘 우연히 만난 까마귀에게서 한 수 가르침을 배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