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등에 올라타고서
꽃등에 올라타고서
  • 송란교 기자
  • 승인 2023.04.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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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벚꽃은 말없이 삭막했던 천지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밤사이 만발(滿發)하였다가 눈이 되어 흩날리고 비가 되어 흩뿌리고 있다. 왜 이리 서둘러 떨어지는가 하였더니, 봄 가뭄에 신음하는 대지를 위해 단비를 예비하였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 빨리 내려앉을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침나절에 다 보기 아까워서 조금 남겨두었더니 저녁나절에 와보니 후다닥 다 떨어져 버렸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도 아닌 화무일일홍(華無一日虹)이 되어버렸구나.

엄마 등에 업혀 잠이 든 아이가 눈동자를 꼼지락거린다. 이내 눈을 뜨고서 입으로는 웅얼웅얼하고 팔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다. 덩달아 사뿐사뿐 내리던 꽃잎들도 사납게 쏟아진다. 조그만 아이 얼굴을 온통 꽃잎으로 뒤덮을 기세다. 눈이 가려지고 입이 보이지 않으니 이를 어쩌나. 꽃잎이 엄마 젖 내음에 취해 모두 다 달라붙는다. 아이는 한잎 두잎 떼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 생각했는지 냅다 한 바퀴를 뒹군다. 머리를 세게 휘저어본다. 끈질기게 버티던 꽃잎들은 그래도 살아남아 엄마 등에 꽃물을 들이고 있다. 엄마도 마음껏 꽃놀이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할머니 굽은 등에 올라타는 녀석들, 할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새우등을 내어준다. 그곳에도 꽃잎들이 수북이 쌓인다. 그냥 그 자리가 편해서 잠시 쉬어가려 한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굽은 등을 오랫동안 펴질 않고 있다. 바퀴가 넷 달린 지팡이를 짚고서 꽃길을 그렇게 예쁘게 다듬고 있다. 꽃잎과 함께 걷고 있다. 감동이 흐르는 꽃 터널이 할머니의 정성으로 이렇게 완공되고 있다.

꽃등에 올라타서 춤을 추는 녀석도 있다. 윙윙거리며 꽃술을 여기저기 찔러댄다. 영혼 없는 영혼마저 탈탈 빨아가려는 듯 아픈 빨대를 꽃술을 향해 거침없이 찔러대고 있다. 빈손은 빈속을 채울 수 없다지만 꽃 등 위에 누워 봄 햇살을 봉침(蜂針)인 양 여기저기 쏘이고 있다. 벚꽃 한 잎이 나의 빈 머리통으로 흘러내린다. 물 한 방울도 튕긴다. 병아리 눈물만큼이다. 벌건 대낮이니 이는 빗물은 아닌 듯하다. 벌 똥 아니면 별똥이 떨어진 것이겠지.

피어도 그만 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왜 필요한가? 꽃이 피면 아름답고 지면 슬프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두 살배기 아이는 엄마 젖을 빨다 트림 안 하면 등을 한 대 얻어맞는다. 막걸리 마시고 트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는 더 많은 젖을 빨기 위해서는 트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트림을 시켜 젖을 더 많이 빨리고 싶은 엄마의 배고픈 마음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만 쎄빠지게 하고 있다고 불만만 뒤지게 늘어놓는 사람은 사장일까 종업원일까? 주인의 마음과 머슴의 마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상사나 사장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자체로 그 몫의 50%를 한다고 한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순간 종업원이나 부하직원들은 이미 긴장이 떠난다. 그러니 일인들 제대로 할 것이며 없는 일을 어찌 더 하려 할 것인가? 꽃구경하기도 바쁘다고 웅웅 울어 댄다. 완도 명사십리 울모래도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사법고시 시험 문제 한 개 더 맞추었다고 평생을 갑질 방석에 앉아 있는 판검사들이 자꾸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민심 알아보기 문제로 시험을 보면 그들은 아마 꼴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발 민심을 따라가는 공부 좀 해라’라고 호통치는 스승이 보이지 않으니 너 나 없이 악동(惡童)이 되어버렸나 보다. 민심은 나와 친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그들, 직업이 사기꾼, 피의자, 모사꾼이라 하면 비난받을 일인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세상의 리더’라 우긴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잘났다고 우기고 있다. 상추를 회로 싸 먹어야 맛있다고 큰소리치는 꼴이다. 존경의 마음이 눈 녹듯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막걸리 한잔, 이 빠진 양푼에 부어 놓고 햇빛 넘실거리는 창밖을 들쳐 본다. 꽃잎 하나 떨어질 때마다 아쉬움을 달래려 그 꽃잎 안주 삼아 한잔 더 들이킨다. 막걸리는 걸릴 게 없다고 두 잔이 석 잔이 된다. 아직은 사납지 않은 봄볕에 온몸을 쑤석거린다. 내가 꽃등을 타고 있는가? 꽃잎이 내 등에 매달려 있는가? 춘향(春香)이 아닌 화향(花香)에 취했나 보다. 기다리는 인향(人香)도 오늘은 만 리 밖에서 다가오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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