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쌤의 冊世映世] 나의 생존과 의지는 어디가 경계일까?
[김쌤의 冊世映世] 나의 생존과 의지는 어디가 경계일까?
  • 성광일보
  • 승인 2023.04.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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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 가버나움 >을 보고
김정숙/광진투데이 논설위원

”유치가 다 빠진 걸로 봐서 12살로 추정됩니다.“

레바논의 베이루트 빈민가, 난민의 가혹한 삶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사는 12살 소년, 자인이 있다. 자인은 집안의 생계를 위해 매일 아침 몇 명인지 모를 동생들을 데리고 일한다. 자인에게 삶은 매일이 투쟁이다. 부모는 욕설과 폭행이 일상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는다. 한낮에도 잠을 자거나 담배를 피우며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자인은 덤덤하고 묵묵하게 가족들을 챙긴다. 어릴 때부터 모진 세상과 부딪히다 보니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거칠다.

자인이 가장 아끼는 여동생 사하르가 있는데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받는 애틋한 남매다. 어느날 아침 자인은 사하르가 간밤에 자다가 묻힌 초경혈을 발견한다. 사하르가 임신이 가능한 몸이 된 것이다. 자인은 사하르에게 아무에게도 생리를 시작했다는 말을 하지 말고 들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자신의 옷을 벗어 생리대를 만들어 준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여동생을 누군가에게 팔아 넘긴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자인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월세를 내기 위해 집주인 아사드에게 사하르를 결혼시킨다.

11살의 딸을 팔아 넘긴 부모에게 환멸을 느낀 자인은 결국 집을 떠난다.

가출한 자인이 놀이동산에서 일하겠다고 찾아가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여기서 청소부 라힐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에티오피아 외국인 노동자로 부잣집에서 일하다가 그집 경비원과 사랑에 빠져 임신까지 하게 되었다. 체류증이 없는 자신과 아기가 추방될까봐 그 집에서 달아나 출산한 아기 요나스와 함께 가짜 체류증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라힐은 소년 자인을 데려와 함께 살게 된다. 아기 요나스를 돌봐 달라고 맡기며 자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인은 요나스를 정성스럽게 돌본다. 우유를 먹이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냄비를 악기삼아 음악을 연주해주기도 한다.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던 자인은 아기 요나스를 자기 동생 돌보듯 한다.

어느날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데, 분유가 없어서 옆집 아기가 먹고 있는 젖병을 뺏어다가 요나스에게 먹이고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 하며 아기 요나스를 돌본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자인은 요나스를 돌보며 라힐을 찾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좌절한다. 아기 요나스를 입양 브로커에게 넘기고 자신은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신분증이 필요해서 집으로 돌아갔더니 집에선 자인에게는 신분증이 없으며 출생증명서도 없다고 한다. 살아 있어도 존재를 증명할 서류가 없다. 이때 자인은 11살 여동생 사하르가 출산하다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분노가 치민 자인은 칼을 들고 가 여동생과 결혼한 아사드를 찌른다. 자인은 법정에 서게 되고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이 때 불법 체류로 감옥에 갖힌 라힐과 만나고 훗날 라힐은 아기 요나스를 찾게 된다.

감옥생활을 하던 중 자인은 다시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자기 엄마가 또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면회를 온 엄마가 “신이 잃어버린 것 만큼 돌려 준다”는 말, 사하르가 죽은 대신 아기를 또 주셨다는 그 말에선 분노가 치밀어 결국 부모를 TV방송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사는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합니다!”

개인의 힘으론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부모를 고소함으로써 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자인의 변호사인 나딘은 자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동학대 문제를 세상에 알린다.

나는 난민이라는 입장과 사회구조적 환경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이 영화를 부모교육의 입장에서 무게 중심을 두고 보았다. 요나스의 엄마 라힐이 불법체류자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때, 돈이 없는 자인은 요나스와 함께 장사를 하는데 처방전을 위조해 받은 진통제를 바닷물과 섞어 만든 음료를 팔고, 먹을 것이 없으면 요나스와 얼린 설탕물로 허기를 채우기도 한다. 집에 있던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인을 자꾸 따라오는 요나스의 발목에 밧줄을 묶어두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은 모두 집에서 엄마로부터 배운 것이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자인이 입양 브로커 아스프로에게 요나스를 팔아 넘기는 행동도 자신의 부모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사하르를 조혼으로 팔아 넘기는 장면과 다르지 않다. 부모가 했던 행동들을 자인은 그대로 답습한다.

부모든 자인이든 난민의 암흑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했으나 행동과 결과만을 놓고 봤을 땐 정의롭고 최선을 다했던 자인과 폭력적이고 무책임했던 그의 부모는 마지막 생존의 방법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적쾌락이 번식의 동인이라는 사실보다 모든 생명이 신의 뜻이라는 그들 부모의 믿음은 낳기만 하고 양육은 등한시하게 되었고, 난민이라는 환경과 사회구조에서 개인의지의 수위가 어떻게 자녀에게 되물림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세계 모든 인간의 유전자를 통틀어 눈물샘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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