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 : 題崔孤竹扇 / 기봉 백광홍
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 : 題崔孤竹扇 / 기봉 백광홍
  • 이원주 기자
  • 승인 2014.07.04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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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09)

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 : 題崔孤竹扇 / 기봉 백광홍

사대부의 생활은 누정에서 많은 시문을 음영했다. 친지를 만나거나 가객을 만나도 시문을 음영했다. 주색(酒色)이라고 했다. 하루의 피곤을 술로 풀고 여자를 가까이 하면서 일생을 보냈던 선비들이 있었는가 하면, 백호 임제의 시조에서는 황진이 묘를 찾아 애절하게 음영했던 시문도 본다. 관서평사를 지내던 기봉이 낙향하던 중 고죽 최경창을 만나 그의 부채에 써주었던 시문에서는 안주의 몽강남을 찾아보라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題崔孤竹扇(제최고죽선) / 기봉 백광홍

관서명승 큰 강마다 꽃 정자에 눈 팔면서
백상루에 가거들랑 누각 아래 물어보소
푸른 창 넌지시 넘보는 몽강남이 있을테니.

關西名勝大江三 處處花亭駐客驂
관서명승대강삼 처처화정주객참
君到百祥樓下問 碧牕應有夢江南
군도백상루하문 벽창응유몽강남

고죽의 부채에 써 준 글이 마지막이었나?(題崔孤竹扇)로 제목을 붙어본 칠언절구다. 작가 기봉(岐峯) 백광홍(岐峯 白光弘:1522~1556)은 관서평사를 지냈다. 그가 쓴 가사 관서별곡은 송강의 관동별곡 보다 25년이나 앞선 기행가사의 효시(嚆矢)로 알려진다. 34세에 병으로 귀향하는 도중에 쓴 시며, 이후 객사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관서의 명승으로 큰 강이 셋이 흐르나니 / 곳곳마다 꽃 정자가 객의 수레 머물게 하네 // 그대 백상루에 가거들랑 누각 아래 물어보시게 / 푸른 창엔 분명히 몽강남(夢江南)이 있을테니]라는 시상이다.

병이 깊어 귀향하는 도중에, 백상루를 향하는 도중에 고죽 최경창을 만난다. 가객 시인에게 어찌 여인이 없을손가. 황진이나 이매창 같은 시걸(詩傑)은 아닐지라도 기막힌 사연을 담았던 몽강남 같은 기녀와 아기자기한 로맨스쯤은… 위 시의 제목 밑에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 있어 그 사연이나마 우리는 알 수 있다.

“공이 평사가 되었을 때 안주의 기생을 사랑했다. 병으로 교체되어 돌아오다가 길에서 고죽과 만나서 이 시를 써주었다. 고죽은 부채를 기생에게 주었더니 기생이 구슬퍼하는데 이미 부고가 이르렀다(題崔孤竹扇 [公爲評事時 眷安州妓 以病遞還 路逢交承孤竹 題此詩於扇 孤竹以贈扇妓 妓慘然而已訃至])”에서 보인다.

화자는 관서명승지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으로 관서지방의 절경을 묘사하면서 백상루에 가서 누구에나 몽강남 기생을 물어보라고 한다. 그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거든 안부나마 전해달라고 간곡히 청하는 위 시문에서 깊은 정감을 느끼게 된다.

【한자와 어구】

▲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關西: 여기선 평안북도 접경지역. 名勝: 명승지. 大江三: 큰 강(압록강, 대동강, 청천강) 셋. 花亭: 꽃 정자. 駐: 머물다. 客驂: 나그네의 마차. // 君到: 그대가 도착함. 百祥樓: 청천강 가에 있는 누각. 碧牕: 푸른 창. 應: 응당 반드시. 夢江南: 몽강남(사람 이름), 곧 기봉 백광홍의 정인(情人).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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