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와 기장을 모두 먹어 치우다니 : 沙里花 / 익제 이제현
벼와 기장을 모두 먹어 치우다니 : 沙里花 / 익제 이제현
  • 성광일보
  • 승인 2014.07.3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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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8】

벼와 기장을 모두 먹어 치우다니 : 沙里花 / 익제 이제현

문학은 비유법이나 상징법을 써야 한다는 실증을 보인 작품이 많다. 고려 말부터 시조의 전형을 보여준 작품에서도 그런 사례를 보이지만 정형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한시에서는 더욱 시어의 간결함을 본다. 특히 비판적․고발적․풍자적․상징적인 시문에서는 더욱 그런 예가 많다. 지방관의 가혹한 수탈로 인하여 농민의 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던 시대적 상황과 민족적 현실을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는 한시 작품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沙里花(사리화) >

참새야 일년 농사 아량치 않고 어디 갔니
늙은 홀아비 혼자서 밭을 갈고 김맸건만
이렇게 먹어 치우다니 고생했던 벼와 기장.

黃雀何方來去飛 一年農事不曾知
황작하방래거비 일년농사불증지
鰥翁獨自耕耘了 耗盡田中禾黍爲
환옹독자경운료 모진전중화서위


벼와 기장을 모두 먹어 치우다니(沙里花)로 제목을 붙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익제(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으로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다. 만년인 1357년에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사리(沙里)]는 지방이라기보다는 농민들이 목이 쉬고 근심걱정하며 얻은 꽃 곧 곡식이라는 뜻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참새야 어디에서 오고가며 날고 있는 것이냐 / 일 년 농사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 늙은 홀아비가 혼자 밭을 갈고 김맸는데 / 밭의 벼와 기장을 모두 먹어 치우다니]라고 번역된다.

궁핍한 나라 살림이나 외적 침입 여하에 따라서 백성들 생활상은 많이 달랐다. 부역을 해야 했고, 애써 지은 알곡식을 관(官)과 수탈자에게 바쳤다. 태평성세에도 지방관의 리더십에 따라서 지방민의 생활은 많은 희비가 엇갈렸다. 작자가 살았던 고려 말은 운둔과 피폐 생활의 연속이었다. 가혹한 수탈로 농민생활이 피폐해진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일구어진 작품이다.

시인은 위에서 참새는 무참하게 빼앗아가는 수탈자를 가리킨다. 수탈자는 땀 흘려 농사지은 농민들의 피폐함 자체를 자세히 알 리가 없다.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빼앗아 가면 그만이다. 늙은 홀아비는 농부를 지칭한다. 홀아비가 애써 지은 밭곡식을 먹어치우고 있으니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나이 연만한 분들은 6.25때 겪었던 기억을 새롭게 한다. 야음을 틈타 갑자기 들이 닥쳤던 인민군이 밥이며 쌀을 수탈해 가던 그 때 그 일들이. 약탈의 분함을 삭혀가는 대목과 적절한 비유법을 구사하는 부분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

▲ 장 희 구 박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黃雀: 참새, 누런 새. 何方: 어느 곳. 去飛: 날아가다. 一年農事: 일 년 농사. 不曾知: 일찍이 알지 못하고. 鰥翁: 늙은 홀아버지. 獨: 혼자. 耕耘了: 밭을 갈고 김을 매다. 耗盡: 1)줄거나 닳아서 다 없어짐, 2)‘몹시’의 방언. 田中禾黍: 밭 가운데 벼와 기장. 爲: 하다, 여기선 ‘먹다’는 뜻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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