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다(我本靑山鶴) / 사명당 유정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다(我本靑山鶴) / 사명당 유정
  • 성광일보
  • 승인 2014.07.3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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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9】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다(我本靑山鶴) / 사명당 유정

지루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라 안팎에서는 전쟁의 후유증 치료에 정신이 없었다. 일본은 수차례 사신 보낼 것을 요청해왔다. 조정에서는 사명대사를 천거하여 보냈다.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德川家康)를 만난 사명당과 문답(問答)하는 시문이다. 물음도 소름 끼쳤지만, 시인의 대답은 더 명쾌했다. ‘너는 봉황이 노니는 이곳에 왜 왔느냐?’는 질문에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었는데 잘못 떨어져 여기에 왔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我本靑山鶴(아본청산학) / 사명당 유정

나는 본디 청산학으로 오색구름 위에 놀았다
하루아침에 운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야계(野鷄)가 들끓은 곳에 잘못 떨어져 왔구나.

我本靑山鶴 常有五色雲
아본청산학 상유오색운
一朝雲霧盡 誤落野鷄群
일조운무진 오락야계군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이다(我本靑山鶴)로 제목을 붙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사명당(風月亭) 유정(惟政:1544년~1610년)으로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장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전공을 세우고 당상관(堂上官)의 위계를 받았다. 존경의 뜻으로 사명대사로 부른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나는 본디 청산학이여서 / 항상 오색구름 위에 놀았는데 // 하루아침에 운무가 사라져서 / 야계(꿩)들이 노는 데로 잘못 떨어졌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는 임진왜란 후 사명대사와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나눈 문답 시로 개화예술공원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다음은 도쿠가와가 처음 묻는 시다. [돌 위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石上難生草) / 방 안에는 구름이 일기 어렵네(房中難起雲) // 너는 어느 산의 새 이기에(汝爾何山鳥) / 봉황이 노는 데 왔느냐?(來參鳳凰群)] 이에 대해 답한 시가 위와 같다. 일본 장수의 조롱에 상대를 꿩 새끼로 비유한 시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후 1604년 선조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강화사로 건너가 1605년 당시 일본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화협상을 하기 위해 교토 후시미성(伏見城)에서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은 시다.

이 시로 인하여 포로 3500명과 약탈해간 문화재를 환수하여 돌아오고 향후 250여 년간 평화수교협약을 맺었다. 탁월한 인품과 능력을 인정받아 선조는 영의정에 제수했으나 삼일 만에 사임했던 일화는 지금도 ‘삼일정승’으로 남아있다. 화자는 본래 청산의 학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운무가 사라져 잘못 떨어졌음을 빗대고 있다. 간담이 서늘함을 느낀다.

▲ 장 희 구 박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한자와 어구】
我本: 나는 근본 ~이었다. 靑山鶴: 청산의 학. 常有: 항상 ~이 있다. 五色雲: 오색의 구름. 一朝: 하루아침에, 곧 일시에. 雲霧: 구름과 안개. 盡: 다하다, 사라지다. 誤: 잘못하여서. 落: 떨어지다. 野鷄群: 야계의 무리들, 곧 꿩의 무리들이 노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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