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헌 객원기자의 한국화, 다시 그리기 ⑩
이교헌 객원기자의 한국화, 다시 그리기 ⑩
  • 서울동북뉴스
  • 승인 2012.05.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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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당시 전라 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첫 번째 싸움인 옥포해전(1592년 5월 7일)은 경상우수사 원균과 장군이 합세한 싸움으로 옥포해전의 승리를 통해 조선 수군은 해전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원균 장군의 함대와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한 이순신은 자신의 기함을 중심으로 횡렬로 늘어서서 왜군의 중심부를 공격하여, 왜군 도도다카토라 함대 26척을 격침시키어 최초의 승리를 장식하였다.

옥포 앞바다의 승전은 조선이 향후 전쟁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되는 최초의 중요한 싸움이었다. 김홍도의 《타작》이라는 작품을 통해 이 위대한 옥포해전의 승리를 나타내었는데, 타작을 하는 농부들이 웃통을 벗고 일하는 모습에서 '웃통벗고'는 옥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해전에서 적들을 보리 타작하며 도륙하는 장면이 나타내어진 것이다.

▲ 씨름
1597년(선조 30) 왜적들은 이중 간첩으로 하여금 가등청정이 도해한다는 거짓정보를 흘리는 계략을 꾸몄다. 이를 사실로 믿은 조정은 그를 생포하라고 명령을 하였는데 명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일본의 계략임을 간파하여 출동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적장을 놓아주었다는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역적으로 몰리어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되었고, 이후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의 밑에서 벼슬과 직책 없이 백의종군하였다. 이 민족의 성웅에게 어처구니없는 역적이라는 당시 조정의 무능력함과 멍청한 판단력은 김홍도의 그림 《씨름》과 《장터길》로 묘사되었다.

《씨름》그림에서 우측 아래쪽에 앉아 경기를 구경하고 있는 두 사람의 팔을 보면 왼손과 오른손의 모습이 바뀌어져 있다. 김홍도가 그림을 잘못 그렸다고 보여지지는 않는 바, 이는 음양이 뒤바뀔 만한, 좌우가 변동될 만한 괴변으로 오히려, 무능한 조정이 역적들이면 역적들이지, 이순신 장군이 역적이 된 사건을 좌우의 손이 바뀌어진 것으로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장터길》은 역적으로 몰렸다가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백의종군하는 광경으로 흰 옷을 입고 권율 장군 밑에서 산을 끼고 돌아가는 광경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동년 7월 22일 유성룡(柳成龍) 등의 간곡한 건의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된 이순신은 휘하 군사들의 전열을 가다듬었으나, 당시 군중에 남아 있던 쓸만한 전선(戰船)은 겨우 12척에 불과하였고, 일반 백성들이 나중에 가져온 한 척이 더해져서 13척이 되었다. 이때 왜적들은 남해안 일대에 침범하면서, 육군의 육상 진출과 동시에 서해로 진출하려 하였다.

따라서 이순신은 서해 진출의 요지가 되는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을 지키기 위해 총력전을 택하였다. 적의 정세를 낱낱이 탐지한 이순신은 일본 수군이 명량으로 진입하자, 출전령을 내리고 최선두에 서서 명량으로 향하였는데, 그 때 명량의 조류는 거의 정조시기(停潮時期)였으며 일본 수군의 전선은 133척이었다.

싸움이 시작되자, 조류는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했으며,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한 조류는 소수의 전선이 활동하는 조선 수군에 비해 많은 전선을 거느리고 있는 왜군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였다. 협수로에서의 불규칙한 조류 분포로 인해 서로의 진형(陣形)과 대오(隊伍)가 붕괴되고 있었다. 전투의 기세를 잡은 조선수군은 적선 31척을 분파시켰고, 왜적들은 도주하였다. 이 해전의 승리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10배 이상의 적을 맞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그들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

▲ 타작
한편, 열세한 병력을 지휘한 이순신은 위장전술로써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뒤에서 성원하게 하였다는 것과, 철쇠(鐵鎖)를 협수로에 깔아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기록도 일부 전해오고 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이었던 고 김진규가 제작했던 영화《성웅 이순신》을 초등학교시절 동창들과 함께 단체관람을 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은 조류가 급한 울돌목을 살펴보면서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모습은 어린시절 필자를 재미와 감동으로 흥분시켰던 장면이다.

▲ 빨래터
김홍도의 작품 《빨래터》는 이순신장군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아낙네들이 소용돌이처럼 돌돌 말리게 빨래를 짜고, 머리를 똘똘말려 땋는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는데, 장군이 여인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이는 장군이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대목에서 울돌목의 소용돌이를 관찰하며 장차 적들과 싸움을 대비하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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