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욱 칼럼》행정청의 두고 보자는 식의 행정처분
《이춘욱 칼럼》행정청의 두고 보자는 식의 행정처분
  • 성광일보
  • 승인 2015.09.07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처분을 함에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면
두고 보자는 협박이 되고 만다.
근대 국가에서 절대로 금기시 하는 덕목 중에 하나는
자력구제 금지원칙이다.
일반 국민이 이러할 진대 국가기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가 없는 덕목이다.

              이춘욱/논설주간

우리 속담에 “두고 보자는 놈 무섭지 않다.”라는 것이 있다. 사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어찌할 능력이나 도리가 없는 사람의 날이 선 다짐과 보복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다.”라는 것도 있고,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도 하였다.

모진 마음을 계속 이어가기는 어렵다. 시간은 아픔을 삭여주는 효과가 있어 그렇다. 받은 것 이상으로 되갚는 일은 쓰디쓴 쓸개를 씹으며 마음을 다잡아 실력을 키워야 하기에 두고 보자는 사람을 무서워할 일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공권력(公權力)이라면 사정은 매우 다르다.

벌써 몇 해 전의 일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본사에서 필자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수도권 대도시 ― 광역시를 제외한 인구 50만 명 이상의 도시를 말하는데 자치구가 아닌 구청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에서 건립하여 운용 중인 아파트 분양용 모델하우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회사를 방문해서 자료를 파악하고 검토해보니 이것은 건설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행정청의 처분에 문제가 있음을 확연하였다. 자초지종을 밝힌 보고서를 받아본 건설회사는 경악하였다. 충격을 받은 회사는 그 유명한 그룹의 법무실에다 법률적 검토를 요청한다. 결과는 쟁송 절차가 필요치 않을 만큼 아주 정확한 분석이라는 것이다. 곧장 행정청에 이의신청 형식으로 제출되었다. 시청의 인식도 같았다. 자기들의 잘못을 피해갈 수 없음을 인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아무런 보람을 얻지 못하였다. 거대한 국가 공권력 앞에 무기력한 백성의 떠는 모습만을 보았다. 협박 때문이었다. “삼성이 하는 사업장이 어디 한두 곳이냐?”하면서, “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협박 한다. 대책회의까지 한 건설회사는 결국 수억 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백기투항을 하고 말았다. 이에 더하여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불충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선처마저 빌었다.

정말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나 싶을 것이다. 더구나 세계적이라 해도 모자랄 가장 조직적인 기업군을 이루고 있는 삼성임에야 더할 나위가 있겠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별건수사 식으로 표출되는 이러한 것은 의외로 많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니 보도가 잘 되지 않고, 직접적인 증좌를 남기지 않으니 사건화 하기가 쉽지 않고, 상대는 국가공권력이라 대들지 못하여 잘 보이지 않을 뿐이고, 일반인과는 연관이 없어 간과할 따름이니 그렇다.

요마적에 어떤 재개발 조합을 방문하였다. 그곳은 아파트 준공인가를 준비 중인데 삼성보다 더 떨고 있는 모양을 차마 나는 보고 말았다. 재개발사업의 도로개설과 관련된 사안인데 행정청과 조합의 해석이 다르다. 심지어 인가청 내부 각 부서마다 의견이 같지 않다. 협박은 “도로 말고 다른 공사는 법대로 잘 이행하였는가 두고 보자”는 거다. 이쯤 되면 사업시행자를 비롯하여 건설사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시대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법대로 제대로 살고 지는 예는 잘 없다. 법이란 선언적인 것도 있고, 가치지향적인 것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빌미로 행정청은 두고 보자고 한다. 전근대 국가를 구분 짓는 잣대는 여럿이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자력구제(自力救濟) 즉 사적인 보복을 금지하는 것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법제하에서는 부모를 해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는 죽일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가족이 있는 사람을 함부로 못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연좌제(緣坐制)의 폐해도 함께 가졌다.

보복이 성행하면 국가는 존재할 명분이 없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 하는 행정기관은 더할 나위도 없다. 두고 보자는 놈이 무섭지 않은 것은 그가 당장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러한 것일 테지만 행정기관의 힘에 휘둘리면 그 피해는 매우 크다.

어찌 그들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촉구하지 않을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