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란 숲 자취가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데 : 月欲生 / 만해 한용운
숲이란 숲 자취가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데 : 月欲生 / 만해 한용운
  • 성광일보
  • 승인 2015.09.1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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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7)

숲이란 숲 자취가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데 : 月欲生 / 만해 한용운

이를테면 서문격인 ‘달을 보다’는 견월(見月)의 단계를 지나면 달과 함께 노는 농월(弄月)의 단계에 접어든다. 시인은 이를 완월(玩月)이라고 표현하며 밤은 깊어 가고 마음만은 걷잡을 수가 없다는 한없는 정감을 나타냈다. 이 단계가 지나고 나면서 합삭된 달이 비로소 생기고자 하는 단계다. 인간으로 말하면 합삭의 상태에서 잉태된 달이 세상에 태어나려고 꾸물대는 단계일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인은 어두움의 장막을 드리우는 곳에는, 숲이란 숲 자취들이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 것을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月欲生(월욕생) / 만해 한용운

뭇별들 나타나서 햇빛을 앗아 먹고
온갖 귀신 다 나타나 활개를 치는구나
장막을 드리운 곳에 감춰가는 저 숲속.

衆星方奪照 百鬼皆停遊
중성방탈조 백귀개정유
夜色漸墜地 千林各自收
야색점추지 천림각자수

숲이란 숲 자취가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데(月欲生)로 번안해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뭇 별들 나타나 햇빛을 앗아 먹었으니 / 온갖 귀신이 다 나타나 활개를 치고 있구나 // 마치 어두움의 장막을 드리우는 곳에는 / 숲이란 숲 자취들이 각기 감추어가고 있는 것을]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뭇별들 햇빛 맑고 온갖 귀신 활개 치네, 장막이 드리운 곳에 숲 자취 감추어 가고’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달이 생겨 오르려고 하는구나]로 번역된다. 달을 갖고 놀고 싶은 충동감에서 비롯된 [완월(玩月)]의 단계를 벗어나면 합삭되어 지구는 캄캄한 밤이 된다. 그믐과 초하루의 단계다. 완전하게 달이 자취를 감추어 온 대지는 마치 귀신 나올만큼 어두움이 지속된다. 시인은 이런 합삭(合朔)된 모습을 차곡차곡 넣어두고 싶었다. 지구의 자전과 달의 공전이라는 천문학적인 과학의 원리와 공식에 의하고 있지만, 지구상에서 보는 달은 우리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시인은 상상력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단계가지 이르고 만다. 달과 함께 세상을 가만히 엿보고 있는 뭇 별들이 나타나더니만 낮의 왕자라 할 수 있는 햇빛을 앗아 먹고 말았다. 그랬더니 온갖 귀신들이 나타나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적막한 밤을 상상내고 말았다. 낮이면 선명하게 보였던 산천이며 온갖 물건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귀신이 잡아먹는 것으로 상상해 냈다.

귀신의 활개에 의해 지상에서 보이는 모근 것을 다 잡아먹었다고 상상했던 화자는 마치 그 어두움을 드리는 장막이 쳐진 곳에는 숲이란 숲 자취들이 서서히 감추어가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밤이 되면 귀신이 지상의 모든 것을 다 집어삼켰다는 시상으로 덧칠하게 된다.

한자와 어구

衆星: (달과 함께 비춘) 모든 별들. 方: 바야흐로. 奪照: 밝음을 앗아간다. 百鬼: 모든 귀신. 皆: 다. 모두. 停遊: (밤에) 머물면서 놀고 있다. // 夜色: 밤의 빛깔. 漸: 점점. 墜地: 지상에 떨어지다. 내려앉다. 千林: 모든 수풀. 各: 각자. 제각각. 自收: 스스로 감추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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