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을 베풂이라 여길 때
행정을 베풂이라 여길 때
  • 성광일보
  • 승인 2015.09.2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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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 칼럼

행정을 행함에 있어서 당연한 직무수행을 마치 자기가 무엇을 베푼다고 인식할 때에
비로소 부정과 부패는 싹이 자라게 된다.
진실로 베풀고 구난하는 행정은 많지 않다.
목민(牧民)을 한다거나 공복으로 봉사한다는 식의 자세 또한 너무 거창하다.

             이춘욱/논설주간

행정(行政)이라는 것을 사전에 찾아보면 “법 아래에서 법의 규제를 받으며, 국가의 목적 또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행하는 국가작용”으로 정의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어디에고 공무원 개인이 마치 인심을 베풀기라도 하는 그러한 측면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자기과시 행정과 더불어 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그들을 일으켜 국민의 곁에 서게 하는 것은 간관의 의무중의 하나일 것이다.

남도(南道)의 기후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거칠다. 큰물이 나면 강물이 역류한다. 흙탕물이 골짜기까지 차오르면 등교한 학생은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절대로 쉬이 빠지지 않은 역수(逆水)에는 보릿고개 배고픈 내음이 진하게 난다.

하늘은 자고로 절대 인자(仁慈)하지 않았다. 황토물이 휩쓸고 간 자국은 채 지워지지 않았건만 소에게 먹일 물이 없을 정도로 메마름은 오래 지속된다. 동네에서는 절대 마르지 않을 샘을 팠다. 이른바 관정(管井)인데, 도랑 양측에 우물을 파서 구멍이 숭숭한 콘크리트 관으로 땅 밑을 서로 연결을 한 것이다. 이 관정이 얼마 전 하천 정비사업으로 묻히게 되었고, 수리권(水利權)은 당연히 손실보상의 대상이다.

낙향하여 이장을 하는 둘째 형이 마을을 대표하여 수 백 만원의 보상금을 수령하였다. 그런데 보상금을 감정평가하여 산정하고 손수 지급한 공무원이 거의 매일 연락이 온다는 거다. “돈 잘 받았나?”, “내가 이번에 얼마나 힘을 쓴 줄 아느냐?”, “돈은 어떻게 쓸 것인가?”, “군청에는 한번 나올 계획이 없느냐?”는 등 대부분 이런 식이다. 아무리 무던해도 무슨 저의를 가지고 말하는 것인지 알기는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은 사례는 아주 흔하다. 바로 당연히 행하는 자신의 직분을 마치 봉사하고 베푼다고 그릇되게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바로 부정과 부패의 시작점이 되는 생각이다. 이것은 시골 군청의 공무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원이나 재판소 등에서도 다양하게 발견된다. 모함이나 별건수사 등 억울하게 재판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들여다본다면 더욱 이해가 쉽다. 무고라고 하면 당연지사 무죄이건만 재판관은 큰 아량을 베푸는 것인 양 기꺼워한다.

법원의 판례나 행정청의 재결, 그리고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관습법을 형성한다. 조리나 규정 그리고 사회상규와 더불어 제정 법률을 보충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관습법마저 민원해결에 해당하는 행정행위를 권리설정 행위라 잘못 판단하는 경우 또한 많이 발견된다.

대법원은 재개발사업이나 재건축사업의 조합설립인가를 권리설정에 해당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아직 사단법인의 설립은 허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허가는 권리설정을 해주는 처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른바 행정처분이라고 하는 것은 인가, 허가, 특허, 확인, 공증, 통지, 신고, 독촉, 최고 등의 실로 다양한 명칭으로 자리한다. 국민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생활 속에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복잡한 행정행위는 법률적인 성격에 따라 강학상으로 대략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물론 복합적인 것도 있기는 하다.

허가(許可)는 포괄적 금지행위를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 해제 해주는 처분이다. 인가(認可)는 행정청이 당사자가 아니라 사인간의 법률행위를 완성해 주는 보충적 행위이다. 특허(特許)라는 것은 권리설정을 하는 행정처분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서 행정청이 재량을 가지고 여러 가지 부담이 되는 조건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특허밖에 없다.

이 말은 곧 특허처분을 할 때 말고는 절대 베푸는 행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치 담임자가 베풀기라도 하는 듯이 생색을 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행정처분의 법률적 구별이 엄격하지 않으면 모든 국가사무는 곧 권리설정이 될 뿐 아니라 베푸는 것이 되고 만다. 공직자의 사무처리의 바탕이 되는 인식이 이러하다면 국민을 위하는 행정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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