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修身齊家)와 연좌제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연좌제
  • 성광일보
  • 승인 2015.10.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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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 칼럼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문제에서
아직도 진행 중인 서울시장 아들 신체검사 조작
서울시장 후보 아들의 국민비하발언에 이어
집권여당 대표의 마약사위에 이르기까지
공인(公人)의 가족으로서 옳은 삶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연좌제는 결코 지난 시대의 유물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춘욱 논설주간
언젠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가 선거의 이슈가 되었다.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선거에서 거푸 지고 말았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는 아들의 병역문제와 막말 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 뜨거운 쟁점이었다. 이른바 연좌제 문제다. 지금은 여당 대표의 둘째 딸이 택한 사랑이 마약을 손 댄 적이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문제가 한창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은 바칠 수 있어도 자녀가 지은 죄는 부모가 대신할 수는 없다. 다만 공인이라면 더 독하게 처벌받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 연좌제의 본질이다.

연좌제(緣坐制)라고 하면 모두가 지나간 왕조시대의 빛바랜 유물쯤으로 인식된다. 아니면 지구상에 유일한 세습독재 사회주의국가에 존재하는 몰가치적이고, 비인간적인 악습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연좌제도의 암울한 굴레를 절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궤변일까?

연좌제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비의 죄가 아들을 처벌받게 한다. 자식이 가지는 허물조차 부모는 파렴치한이 되기도 한다. 얼굴도 모르는 아재비 삼촌의 죄상은 물론 이거니와 외가나 처가를 구분하지도 가리지도 않는다. 김삿갓의 예에서 보듯이 조상의 지난 허물 또한 후손을 평생 방랑하게 만든다.

여태 남북이 나뉘어 이념경쟁을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의 체제경쟁은 혈육과 인척도 믿지 못하게 하였다. 연좌제가 그 중심에 있다. 조금이라도 눈여겨 돌아보면 주변에 연좌제의 고통으로 신음하던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으로 북한을 택하여 간 사람이 남긴 가족의 고통은 어찌 보면 숙명적이다. 그래서 감내할 만도 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사와 관련 없이 북에 사는 경우가 있다. 납북어부나 해안가 등에서 납치되어 북송된 자의 가족이 겪는 감시와 차별의 고통이 고달프기는 이루 형언하기조차 어렵다. 대놓고 말할 그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하다. 우리는 지금 공인이라고 하여 이보다 더한 연좌제의 책임을 묻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공무원시험을 보는데 면접시험에서 자꾸 떨어졌다. 알고 보니 민단에서 조총련으로 전향을 한 고모의 북한 방문 때문이었다. 일흔을 넘겨 지상천국이라 믿고 월북한 고단한 아들을 보기 위한 고모의 전향은 엄청난 좌절을 주고 말았다. 연좌제다. 노동판을 전전하며 내 자신을 학대하던 그 상실의 시간은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평생 헌옷을 모아 보내고, 모자란 양식을 보탠 분이라서가 아니다. 그때 그러한 사람은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다.

그런데 법률적으로 연좌제는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이 연좌제는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만연하고 있다. 자식의 허물은 곧 아비에게는 죄악이 되는 시대를 바야흐로 살고 있으니 그렇다. 자식은 자고로 어떻게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였다. 키워보고 살아보면 안다. 자신은 비록 바람의 탄식을 알아 뒤늦게 불효를 뉘우친다고 해도 자식은 언제나 그렇지는 못하다.

공인의 친인척이라면 숨죽여 살아야 하는 사람은 아들과 딸이 다가 아니다. 형제간은 당연지사다. 처남은 물론 공인이라면 5촌 조카의 범죄도 허물이 된다. 심지어 영부인의 고향 동네 먼 친척도 뉴스거리가 되었다. 아무리 공인이라도 자식마저 어떻게 할 수 없을진대 어찌 형제와 친척까지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거나 강제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최고 존엄과 관련된 중대 범죄에는 3족을 멸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9족까지 처벌한다. 그나마 사전 이혼을 통해서 일부가 살아남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있다. 바로 우리가 은연중에 언론을 통해서 적용하는 연좌제이다.

과거 대통령후보나 서울시장 후보의 병역문제와 국민비하발언 그리고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다. 당해본 사람의 절실함이다. 자식은 절대 자기가 어찌 할 수 없다. 우리는 공인의 가족에게 어떠한 혜택도 주지 않았다. 다만 엄한 책임은 함께 묻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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