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과 교수 그리고 공직후보자 선택권
선생과 교수 그리고 공직후보자 선택권
  • 성광일보
  • 승인 2015.10.2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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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 칼럼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직업선호도의 한 단면이다.
학교 선생이 공직후보자로 선거에 출마하면
그 자체로 이야기 거리가 된다.
교수는 그렇지 않다.
교수와 공직후보자 선택에 관한 날선 고민이다.

            이춘욱 /논설주간
선생이라는 낱말만큼 극단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드물다. 어떤 것을 가르치는 관점에서 보면 초․중․고등학교 선생은 교사라고 한다. 전문학교 이상 대학생을 가르치면 교수라고 부른다. 강사는 학원이나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는 사람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모두 교수가 되고 더 이상 없다.

우리에게 선생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강수선생이나 백결선생 등이 그 예가 된다. 백제나 고구려에서는 박사라는 낱말이 쓰였다. 오경박사나 태학박사가 그것이다. 유교적 가르침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이는 이 선생이라는 말은 고려시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불교를 국교로 하여 국사(國師)라는 말이 친숙하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한 조선 때 비로소 선생이 보편화 된다. 그러나 남명 조식과 율곡 이이 그리고 퇴계 이황과 같이 거의 성현의 반열에 든 경우에 쓰다 보니 웬만해서 선생을 붙이지 못할 만큼 존귀한 것이 되고 말았다.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구한말의 국권침탈 시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로 비하되고 말았다. 사전을 찾아보면 한편으로 ‘시비할 때 발어사’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봐! 선생!”이라고 하면 싸움을 피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선생이 선거에 출마하면 뉴스거리가 되기는 충분하다.

선생이 이렇게 희화화된 사정은 일제가 초등교육법을 제정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선생이라 한 것 때문이라는 것이 다수이론이다. 그러나 한․중․일의 선생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믿을 수 없다. 하늘 어디쯤 걸려 있었을 선생은 동양 3국에서 공히 세속화 되어버렸다.

그 뒤를 교수가 잰 걸음으로 따르고 있다. 형태도 다양하고 골도 매우 깊다. 이미 교수와 부교수 그리고 조교수의 개념은 없어진지 오래다. 전임강사 또한 교수라고 한다. 이것도 모자라 석좌교수․명예교수․겸임교수․초빙교수․특임교수․외래교수․교환교수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확한 개념은 이해가 불가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교수라는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교육공무원법」이나 「대학설립운영규정」 등은 다르다. 명예교수라고 하는 반면에 겸임교원이라 하고, 초빙교원이라 한다. 교수라는 칭호를 주지 않았다. 교원은 총장과 학장 그리고 교수와 부교수 및 조교수와 전임강사까지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도 의원이라 하는 것과 진배가 없어 보인다.

공직후보자를 선택함에 있어 직업이나 직위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방송이나 언론에 출연하는 패널의 직업 또한 중요하다. 그 중심에 교수가 있다. 학원이나 기업체 연구소 등에 재직하는 사람들조차 교수로 불리는 판에 이것이 뭐에 중요할 것이냐고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 바로잡을 가치는 충분하다.

종합편성채널, 이른바 종편이 처음 전파를 탈 때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종일 방송을 하면 무슨 소재로 꾸릴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사건 중심의 특화된 편성으로 공중파조차 벤치마킹할 정도다. 그곳에 출연하는 패널들을 관찰하면 교수가 많다. 하지만 가만히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실제 교수는 드물고 전직이 기자이거나 국가기관에 근무하던 사람이거나 군 출신 등이 많다. 교수라고 하면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의외이다. 모두 초빙교수다 특임교수라고 하여 부풀려 지칭한다.

아직 우리사회에 교수는 선생처럼 땅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세속화되지도 않았다. 그러니 공직후보에 출마하거나 방송출연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던지 교수라 이름표를 달면 아주 유리하다는 것쯤은 상식이 되었다.

학문을 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이 그냥 교수도 아니고 특임이니 초빙이니 하는 낱말로 치장을 하고 공직후보자로 나서면 이것은 유권자의 후보선택권을 심히 훼손하는 것이 되고 만다.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다름없다. 국민의 시청권을 방해하는 것이다.

방송은 채널 돌려 외면하면 된다. 그러나 교수와 거리가 먼 사람이 교수가 되어 공직선거에서 당선되면 유권자의 훼손된 후보선택권은 복구가 불가하다. 다만 그 폐해는 고스란히 사회적 책임이 되고 만다. 더구나 특임․초빙교수이던 사람이 당선이 되고 난 뒤에 그 허황된 직분을 맞추기 위해 비로소 대학원에 입학하는 기현상이 오늘의 현실임에야 더할 나위도 없다.

교수도 선생처럼 희화화되고 비속화될 일만 남은 듯하여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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