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일고 호랑이 우니 용마저 우짖구나 : 尋牛 / 만해 한용운
바람이 일고 호랑이 우니 용마저 우짖구나 : 尋牛 / 만해 한용운
  • 성광일보
  • 승인 2015.10.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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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1)

바람이 일고 호랑이 우니 용마저 우짖구나 : 尋牛 / 만해 한용운

불가(佛家)에서는 오래 전부터 [소]를 진리의 상징으로 보고 심법전수의 수단으로 삼았다. 절마다 [소를 찾는 그림(尋牛圖)]을 벽에 둘러가며 그려 붙였다. 최초의 심우도를 그렸던 송나라 때의 곽암선사는 화엄경이 말하는 미륵불(彌勒佛)의 출세를 상징화하여 그렸다고 한다. 심법(心法)을 닦는 것이 본업이 되다보니 현재 불교의 심우(尋牛)는 미래불(未來佛)과 관계없는 심우(心牛)가 되었다. 시인은 깊은 골 높은 벼랑 잡아 오를 수 없었으니, 바람이 일고 호랑이도 우니 용마저 우짖는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尋牛(심우) / 만해 한용운

못 찾지는 않겠지만 흰 구름 짙게 끼어
깊은 골 높은 벼랑 오를 수는 없겠지만
용마져 우짖는구나, 바람 일고 호랑이 우니.

此物元非無處尋 山中但覺白雲深
차물원비무처심   산중단각백운심
絶壑斷崖攀不得 風生虎嘯復龍唫
절학단애반불득   풍생호소부용금

바람이 일고 호랑이도 우니 용마저 우짖는구나(尋牛)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원래 이 물건 찾지 못할 건 아니겠으나 / 산속엔 흰 구름이 짙게 끼어 있어네 // 깊은 골 높은 벼랑 잡아 오를 수 없었으니 / 바람이 일고 호랑이도 우니 용마저 우짖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찾지 못할 건 아니나 흰 구름이 짙게 끼어, 높은 벼랑 잡지 못해 호랑이 울고 용도 우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소를 찾아 나서면서]로 번역된다. 심우는 선종(禪宗)의 '깨달음'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데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선시(禪詩)의 한 움큼을 시문에 쏟아냈을 것이다. 원래 소를 찾는 일은 할 수 없거나 찾지 못할 건 아니지만, 산속엔 흰 구름 짙게 끼어 있어 찾는 것을 일시 유보했을지도 모른다. 불제자의 깊은 경지인 선종의 ‘깨달음’에 목도의 마음을 담아 본다면 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화자는 깊은 골 높은 벼랑을 잡아 오를 수 없다고 하면서 바람이 일고 호랑이가 울더니만 용마저 우짖는다는 은유적인 비유법을 쓴다. ‘바람’은 일제침략이라는 시대적 상황이고, 호랑이는 심우를 찾지 못하게 만든 일본인이겠으며, 용은 승천을 할 수 없는 시적 상황이 된 화자 자신으로 보아야겠다.

불가에서는 심우(尋牛)를 다음과 같이 기린다(頌).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 찾아 나서니(茫茫撥草去追尋) /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水闊山遙路更深) / 힘 빠지고 피로해 소 찾을 길은 없는데(力盡神疲無處覓) / 오로지 저녁 나뭇가지 매미 울음만이 들리네(但聞楓樹晩蟬吟)]

【한자와 어구】
此物: 이 물건. ‘소’를 뜻함. 元: 원래. 非無處尋: 찾지 못한 것은 아니다. 山中: (깊은)산 중. 但覺: 다만 깨닫다. 白雲深: 흰 구름이 깊다. // 絶壑: 깊은 골. 斷崖: 끊어진 언덕. 攀不得: 잡아 오르지 못한다. 風生: 바람이 일다. 虎嘯: 호랑이가 울다. 復: 더불어. 다시. 龍唫: 용이 우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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