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토굴’에 대한 언론의 시각
‘손학규 토굴’에 대한 언론의 시각
  • 성광일보
  • 승인 2015.11.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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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 칼럼

다듬어지고 수리되어 제법 살만한 농촌 주택을
정계를 은퇴한 손학규 전민주통합당 대표가 산다고 해서
대다수 언론에서 토굴(土窟)이라 부르고 있다.
가서 직접보고 사진 찍어 보도하는 언론이
도대체 어떤 눈을 가져야 그리 볼 수 있을까?
인근에 백련사와 다산초당이 있어 더욱 토굴은 어색하다.

              이춘욱/논설주간
야당의 지지기반인 호남의 인심이 이반하더니 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은둔한 손학규 전의원에 대한 정계복귀에 관한 논의가 돋아난다. 마침 카자흐스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그가 사는 곳을 칭하여 언론은 토굴이라 하였다.

우리에게 ‘토굴’이라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젓갈과 연관 지을 것이다. 사시사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주는 토굴은 새우젓 숙성에 아주 필수적인 장소인 까닭이다. 그렇다. 토굴은 땅굴과 같은 말이다. 절대 낯설지 않는 이 단어를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를 해도 매 한가지다.

이 토굴이 사람의 삶과 관련을 짓자면 곧 구도자의 수양과 연관된다. 곧 달마대사나 성철스님의 수행 장소쯤이 된다는 말이다. 소설 『장길산』에는 “김기라는 사람 네는 그 집에서 쫓겨나 마을 뒤의 언덕배기에다 토굴을 파고 삽디다.”라는 구절이 있다. 토굴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처음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낙향한 손학규 전의원이 토굴에 산다고 하기에 의아해 했다. 그는 굴을 파서 수양할 처지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영상을 통해서 전해지는 거처는 절대 험하지 않은 농촌주택이었다. 기둥도 있고 마루도 있어 토굴과 어울리지 않은 집이다.

그런데 어찌 멀쩡한 시골 주택을 칭하여 토굴이라 하는지 알 수 없다. 토담집이라 하는 곳도 있지만 보도가 지향하는 바와 달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현장에 직접 가서 사진을 찍어 보도하는 언론은 어떠한 시각을 가졌기에 그러는지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손학규의 토굴’ 이란 이 신조어는 신비함을 담고 있다. 떠난 자가 돌아올 염치를 만들고 있는 듯도 하다. 토굴은 전라남도 강진에 있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선생의 유배지였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은 이웃이다. 녹차로 유명한 이곳에 ‘손학규의 토굴’이 있으니 다산과 초의선사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더불어 토굴이라 했으니 선승마냥 구도자의 모습도 더했다. 수양할 처지가 아닌 것은 자고로 부인과 함께하는 선승(禪僧)은 없었기에 그리 본 것이다.

언론이 이래서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민주화 이후의 우리 근대 정치사는 ‘아름다운 경선’과 ‘추악한 불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종찬에서 비롯되어 박찬종과 이인제 그리고 손학규로 물림이 이어졌다. 속칭 ‘손학규법’이라는 것을 제정하게 한 그는 경선과정에서 자신을 일으켜 키운 정당을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의 잔재’라 하여 침을 뱉고 떠났다. 그리고는 이념이 절대적으로 다른 민주통합당 대표를 역임한다. 작년 7.30 재보선에서 수원에 출마하여 처참한 패배를 당한 후로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다. 구도자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에게 토굴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우리 언론은 이상한 시각을 가졌다. 죽음에 관대하고,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한 용서는 후하다. 도가 넘는 날선 비판을 일삼다가도 죽음 앞에서 허물은 온 데 간 데가 없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통 미담만 보도하는 것이 우리 언론의 일상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택한 길을 떠난 전후로 해서 언론의 보도내용을 확인하면 충분하다.

격한 권력다툼 결과 ‘자의반 타의반’이라 하고 외유를 떠난 JP, 오로지 야권분열의 멍에를 혼자지고 정계를 은퇴하여 영국으로 떠난 DJ를 오버랩하여 작금의 언론은 토굴정치라 명명하고는 또 하나의 과정을 엮어 가고 있다.

시골 벽지에서 자란 필자의 상식으로 보자면 기존의 초가삼간을 현대식으로 손을 본 것이다. 살만하다는 거다. 부엌 한 칸에 방 한 칸의 오두막은 마을에 더러 있었다. 그 때 그곳에는 중산층은 되어야 세 칸짜리 초가를 가졌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오두막집은 이 토굴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골출신 절반 이상이 토굴보다 못한 데에서 나고 자란 것이 되고 만다.

토굴(土窟)은 땅을 파서 만든 굴을 말한다. 그는 땅굴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언론이 그기에 산다고 자꾸 그러면 결국 옳은 것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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