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을 필요 있을 것인가 : 見跡 / 만해 한용운
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을 필요 있을 것인가 : 見跡 / 만해 한용운
  • 성광일보
  • 승인 2015.11.2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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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2)

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을 필요 있을 것인가 : 見跡

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린다. 견적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다. 사람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어 스님들이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 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하는 의미다. 시인은 홀연 풀을 헤치고 꽃 자취를 밟아가노니,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인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見跡(견적) / 만해 한용운

여우 살쾡이 우글대니 도대체 무엇인가
홀연히 풀 헤치고 꽃 자취 밟아가니
다른 걸 찾을 필요있을까 다른 곳엔 없으니.

狐狸滿山凡幾多 回頭又問是甚麽
호리만산범기다 회두우문시심마
忽看披艸踏花跡 別徑何須更覓他
홀간피초답화적 별경하수경멱타

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을 필요 있을 것인가(見跡)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여우 살쾡이 우글대는 산을 넘다가 / 고개 돌려 다시 묻노니 이 대체 무엇인가 // 홀연히 풀 헤치고 꽃 자취를 밟아가노니 / 다른 곳에서 다른 걸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인가]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살쾡이 우글대는 산 다시 묻네 무엇인가, 꽃 자취 밟아 가노니 찾을 필요 있겠는가’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소의 자취를 찾아보다]로 번역된다. 그래도 시인은 소를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대적인 상황이 마땅치 않고, 일본인이 직간접적으로 방해를 부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용이 승천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현실에서 시인의 착잡한 생각은 깊어졌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소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란 기대심리를 버리지 않았던 시인은 험한 곳을 향하는 시적인 여행을 계속한다. 여우와 살쾡이가 우글대는 높은 산을 넘어본다. 그리고 고개 돌려 이름 모를 그대들에게 다시 묻는다.

시대적 상황이 어두운 현실 앞에 선 화자는 다시 용기를 잃지 않고 홀연히 풀을 헤치고 꽃 자취를 밟아가면서 찾고자 하는 ‘소’라고 하는 선도의 길을 찾는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는다거나 찾기 어려운 것을 꾸준하게 찾은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할 짐이 아닌가 생각한다.√ 불가에서는 견우(見跡)를 다음과 같이 기린다(頌). [물가 나무 아래에 발자국은 어지럽게도 많으니(水邊林下跡偏多) / 방초를 헤치고서 그대는 보고 있는가 보지 못하는가(芳草離披見也麽) / 가령 깊은 산 깊은 곳에 문득 있다고 할지라도(縱是深山更深處) / 하늘을 향해 나온 등창코를 어찌 숨기랴!(遼天鼻孔怎藏他)]

【한자와 어구】

狐狸: 여우와 살쾡이. 滿山: 가득한 산. 凡: 무릇. 幾多: 얼마나 많은가. 回頭: 고개를 돌리다. 又問: 또 묻다. 是甚麽: 이것이 어찌 된 일인가. // 忽: 홀연히. 看披艸: 풀을 헤치고 보다. 踏: 밟다. 花跡: 꽃 자취. 別徑: 다른 길. 何須: 어찌 모름지기. 更: 다시. 覓他: 다른 것을 찾다.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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