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보일러와 민생정치
새마을보일러와 민생정치
  • 성광일보
  • 승인 2015.12.07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춘욱 칼럼

권익보다 빵이 더 절실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겨울밤의 온기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새마을 보일러는 국민의 잠자리를 걱정한 박정희대통령의 염려에서 비롯되어 탄생하였다.
민생이 어렵다는 요즘 위정자들에게 그 고민을 깨우쳐 일러 주고 싶다.

             이춘욱/논설주간
첫눈이 내린 섣달 바람이 제법 매섭다. 이때쯤 유명 정치인이나 단체장 들은 매년 연탄을 배달하고 김장하기 행사를 하는데 올해도 빠짐없이 지면을 장식한다. 민생을 살피는 위정자의 행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온청정성(溫凊定省)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한나라 때 예절서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은 시원하게 부모의 잠자리를 정하여 보살피고, 아침에 안부를 살핀다.”는 뜻이다. 이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천궁행(實踐躬行)하기는 결코 쉽지가 않다.

함께 살지 않는 세대가 대부분인 요즘에는 보기 힘든 예절이다. 하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관료들은 참고하여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만하다. 민생은 국민의 잠자리와 안부를 살피는 곳에서 비롯해야 어색하지가 않다. 대통령으로서 이렇듯이 백성의 잠자리를 살핀 사례가 있었음을 알기에 함께 공감하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제3공화국부터 시작된 산업화는 급격한 도시화를 필연적으로 가져왔다. 도회지에서 난방은 먹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이른바 ‘19공탄’이다.

연탄은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 동네가 시로 승격될 만큼 폭발적인 수요를 보였다. 한데 연탄재를 발로 차지 말라고 한 어느 시인의 충고마냥 따스함은 곧 목숨을 건 위험한 것이었다. 1982. 5. 4자 경향신문의 기사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8년간 연탄가스 사고로 인한 희생자가 무려 6만 명에 달하고, 후유증을 겪는 자가 294만 명이다.”라는 충격적인 보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겨울밤의 따스함을 위해 그 때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아픈 추억으로 아예 각인이 되어 버렸다.

그 시대를 산 자는 아마 밤을 새워 토해내어도 경험담은 도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젊은이에게는 그런 추억은 없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한 통치자의 애민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니 놀라운 거다. 바로 국민을 어버이로 보고 온청정성으로 잠자리를 살핀 결과인 것을 알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을 그럭저럭 개근을 하였으나 도회지로 유학을 가서는 매년 3~4일은 결석하였다. 목숨을 걸 수밖에 없던 자치방의 연탄가스 때문이었다. 일산화탄소는 무자비하였다. 절세가인도 허리 휜 가장도 가리지 않았다. 젖먹이를 둔 어미를 앗아가는 데에도 절대 인정을 두지 않았다. 실로 잔인한 존재였다.

대통령은 왜 연탄사고로 죽었느냐를 조사하지 말고, 안 죽는 방법을 찾으라고 배순훈 카이스트 교수에게 야단을 하였다. 1973년의 일이다. 그 꾸지람에 기인하여 탄생한 것이 ‘새마을 보일러’다. 구들을 대신하여 물을 데워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이 원리는 마치 신화와 같았다. 가스 중독은 잦아들었다. 생명을 구하는 신의 물건인양 서민에게 다가왔다.

수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가스 중독이 없어진 사정은 그 때를 살았거나 지금을 배우는 이나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안타깝다. 이 새마을 보일러가 진화하여 온수보일러가 되어 지금은 대단한 열효율을 자랑한다는 것을 알기에도 우리는 인색하다.

민주주의는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고래로 위정자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잊혀 가는 물건 이런만 위대한 발명품일 수밖에 없는 이 새마을 보일러를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치적으로 여기기에 주저하지 않겠다. 역사는 후대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은 과오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공적을 가려 조명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위정자가 진정으로 손을 넣어 국민의 잠자리를 보살피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를 아울러 가질 때에 민심은 연탄불 온기처럼 따스해 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