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발급할 수 없는 병적증명서

강준구/서울지방병무청 발급민원계장

2016-08-23     성광일보

“왜 도망치지 않았나?”
참호 속에 있는 소년병에게 맥아더는 물었다.
“상관에게서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맥아더는 안쓰러워하며 다시 묻는다.
“소원이 있다면 무조건 하나를 들어주겠다. 말해보아라.”
집으로 보내달라고 애걸할 줄 알았던 맥아더는 뜻밖의 답변을 듣는다.
“총과 충분한 실탄을 주십시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성공확률 1/ 5,000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려는 이유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질문에 맥아더는 이렇게 답변한다.
“나는 이 어린 병사를 구해주고 싶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던 올림픽 성화가 서서히 꺼져가는 지난 주말, 나는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봤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동일성을 생각했다. 올림픽에서 하나의 메달을 따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듯,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도 숨겨진 영웅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올림픽 메달의 조력자들은 함께 기뻐하지만, 인천상륙작전에서 산화한 영웅들은 승전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인천상륙작전의 비화들을 보면서, 또한 군적도 없이 죽어가는 켈로부대원들을 보면서 병무행정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거의 오시지 않지만 예전에는 켈로부대원이라며 병적증명서를 끊어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답답해했다. 그분들은 군번은 없지만 분명히 군대를 갔다 왔으니 병적증명서를 끊어달라고 했고, 우리는 군번이 없는 사람은 병적이 없으니 끊어줄 수 없다고 했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지루한 다툼만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켈로부대(KLO-Korean Liaison Office)는 광복이후 대북첩보를 위해 조직한 미군산하 특수 비밀첩보조직으로, 계급도 군번도 없이 활동한 대원들이었다. 이들은 인민군, 중공군, 민간인 등으로 위장해 특수공작임무를 수행했고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팔미도의 등대를 밝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켈로부대원과 미군으로 구성된 한미연합특공대가 팔미도에 주둔한 인민군과 격전을 벌여 켈로부대원 22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그늘에서 활동해야 했다고 한다. 게다가 휴전 이듬해 전격 해체되는 바람에 행방이 묘연해졌고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설움을 겪어왔다. 그러다 몇 년 전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당시 이들이 활약한 사진과 자료 등을 입수하면서 보상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미비한 상황이라고 한다.

켈로부대원만큼 안타까운 분들이 학도병으로 참전하신 분들이다. 영화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다수의 기만 및 교란작전이 펼쳐졌다. 그중 성동격서(聲東擊西) 또는 양동작전(陽動作戰)의 일환으로 경북 영덕군 장사리에서 상륙작전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장사상륙작전이다. 기록을 보면 이 작전은 애국심만으로 자진 입대한 772명의 학도병들이 일주일간의 훈련을 받고 3일치의 식량과 총탄을 지급받은 채 참여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학도병들은 8일간이나 버티면서 적 보급로 및 퇴각로 차단 등 혈전을 치렀는데 결국 대부분 전사, 부상, 행방불명이 됐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전쟁 시 많은 학도병들이 우국충정으로 참전을 했고 희생이 됐는데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당사자 또는 후손들이 참전확인을 받으러 병무청에 오시는 경우가 많았으니 참으로 난감하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나는 국가보훈대상자 및 가족, 후손들에게 국가에서 충분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풍요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덕분이 아니겠는가. 또한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족을 국가에 맡기고 기꺼이 전선에 뛰어들 수 있도록 평상시 국가가 강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 나는 나라를 지키고, 국가는 내 가족을 지켜준다는 신념이 있어야 몸을 사리지 않고 전투에 임할 것이고 그것이 곧 전쟁승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유사시에도 참전자에 대한 기록관리가 정확히 되어 다시는 켈로부대원이나 학도병처럼 병적증명서를 끊을 수 없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면서 나는 두 장면에서 울컥했다. 하나는 서두에 적은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9.28수복 후 서울에 입성한 국군에게 태극기를 흔들며 아들을 찾는 장학수 모친(김영애 분)의 장면이다. 아무리 찾아도 아들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마도 살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 것 같았다. “아들은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살아있으나 죽어있으나 늘 내 곁에 있다”

어쨌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