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자리

보리차 한 잔

2018-06-11     성광일보

여인의 자리
                           박영희

그대는 아는가.
가슴에 품은 꿈을 접어두고
가족을 위해 몰아쉬는
여인의 한숨을

쇼 윈도우에 비친 초라한 모습을 보고도
자신의 욕망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새 옷을 입고 뽐내는 가족을 떠올리는
여인의 심성을

예민한 미각을 충족시키지 못해
맛 투정을 부리는 남편을 보면서도
조미료를 쓰지 않는 
여인의 정성을

매일같이 철로 위로 달리는 기차처럼
수십 년을 반복해 온 무료함에도
젊은 날의 약속을 기대하는
여인의 기다림을

뽑을 수도 없는 새치머리를 보고
이제는 자유롭게 쉬어 가고픈
여인의 마음을

무수한 날들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오뚝이처럼 우뚝 서있는
여인의 자리를
그대는 아는가.

박형희 시인은 고향인 하동의 섬진강변 백사장에서 모래집을 짓고 송림에서 뛰어 놀며 강 건너 무등산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결혼 후, 서울 생활을 하면서 고향이 그리울 때면 '고향 노래'를 즐겨 부르다가 2004년에 월간 '한국시'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스피치 토론을 공부하고, 용인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스피치 외래교수로 활동하였다.
지금은 한국스피치교육센터 원장으로 강의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곳간에 담아두었던 그리움과 추억을 한 편씩 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