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 詩마당> 창문마다 붉은 사랑이 붉게 빛나네

이 민 희

2019-12-11     이기성 기자

창문마다 붉은 사랑이 붉게 빛나네

- 환지통 · 2
                                  이민희

궂은날 쑤시는 무릎도 가뭄에 마른버짐까지도 
품 안으로 품고 있던, 잃은 아린 속
저 붉은 사랑처럼 붉게 아프네

이를테면 달팽이 개구리 메뚜기에서 배추 무 애벌레, 나비까지
밭은 밭대로 논은 논대로 품에서 돌보던 것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가차 없이 쳐내는 건 순전히 인간의 관점이에요 대지는 어린 풀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주름을 감추며 거북등도 방죽도 되는 계절을 건너 왔어요

뒷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올 때 단추를 채우듯
바람의 목에 머플러를 걸쳐줘요
다 날아간 빈자리에서 발가락 비비며 사라져갈 이름을 불러줘요

무소식을 허공에 매단 채 객지를 떠돌다, 기별 없이 한두 번 찾아오는
발자국소리에 귀 기울이고 살던 어머니들처럼 
떠나는 뒷등까지도 허공의 감정을 허락하고 있어요
창문마다 빛나던 붉은 사랑의 시절을 그려 넣으며

찬 서리 내리는 들판에서 
바람이 떠난 자리에서 붉은 음악이 되고 있어요

이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