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2020-02-10     김광부 기자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2020.02.07

(2020.01.18(토))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통곡할 만하다.’”

박지원 저(著) 김혈조 옮김 《열하일기1》 (돌베게, 139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의 ‘도강록’ 중 ‘갑신’편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연암은 청나라 건륭황제의 만수절 축하 사절단을 따라 갑니다. 그가 처음 마주친 요동벌판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삼류하를 건너 냉정에서 아침을 먹고 10리 남짓 가서 산모퉁이 하나를 접어드는 순간,  마두 태복이가 달려 나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백탑(白塔)이 현신하였기에, 이에 아뢰나이다.”(백탑이 보입니다) 이에 급한 마음에 말을 달린 연암은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마에 손을 얹고는 외칩니다.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통곡할 만하다.”

1,200 리에 걸쳐 열흘을 가도 산이라곤 보이질 않는 광활한 요동 벌판에 들어서는 순간, 연암은 마치 창세기 태초의 시공간에 들어선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한바탕 통곡할만하다” 는 건 그런 존재론적 울림의 표현입니다.

요동의 광활한 스케일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좁은 세계 속에 갇혀 있었던가를 느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구절 때문에 ‘갑신’ 편을 ‘호곡장 ’이라고도 부릅니다. “나는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하는 짙은 질문을 던지던 욥에게 하나님이 마침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욥의 질문에 답하시지 않고, 대신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큰 세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욥의 실존과 의식을 벗어난 무한한 세계였습니다. 이에 욥은 연암이 “한바탕 통곡하기 좋구나!” 하는 외침과 비슷한 깨달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42:2,3)

 

한재욱 목사
강남 비전교회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27-2

(2020.01.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