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단상] 명당

김삼기 / 칼럼리스트, 시인

2020-07-06     성광일보
김삼기

거울이 없을 때까지만 해도 인류는 자신의 얼굴이나 외모를 정확히 볼 수 없었고, 특히 뒷모습은 아예 전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타인의 모습은 정확히 볼 수 있었고, 자신의 외모는 타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알지 못한 까닭에 더 당당한 인류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거울의 보급으로 인해 인류가 자신의 겉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외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외모를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거울이 인류 역사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인류가 자신의 내면보다는 타인을 의식해야 하는 부정적인 면도 양산했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 인류는 지난 20세기 동안 나 자신보다는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거기에 맞추는 프레임으로 발전해왔고, 이를 미덕으로 삼으며 도덕이라고 명명까지 해야만 했다.

물론 공동체 사회 속에서 필요한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의 도덕적인 부분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생각하고 의식하는 관점 차원에의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얼마 전 산정호수 근처에 있는 목장 맞은편에 사는 고물상 사장 H씨를 만나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H씨는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펼쳐진 목장의 아침 모습이 천국 같고, 그래서 자신은 천국에서 살지만, 목장에 사는 목장 주인은 맞은편에 보이는 고물들을 보며 사니, 아마 지옥일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천국 같은 목장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신의 자녀들은 교수, 목사, 화가가 되어 성공했는데, 아침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고물을 보고 자란 목장 주인 아들 두 명은 잘 되지 못했다.”고 자랑했다.       

나는 H씨에게 “진짜 명당은 좋은 곳이 아니라, 좋은 곳을 볼 수 있는 곳 같다”고 말해줬다.

경기북부지역이나 강원도 산간지역으로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도로 건너 아름다운 산기슭에 별장형 주택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이 명당이라고 생각해서 그곳에 고급 주택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도로에서 보기에 아름다운 곳, 그리고 드라이브하는 행인이 보기에 좋은 곳이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주택으로서 명당일까?

우리는 왜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별장을 보면서 동물원에 갇혀 있는 원숭이로는 여기지 못할까?
 
바로 타인을 의식하는 프레임이 팽배한 정서 때문이다.

내가 살기 좋고 내가 보기에 좋은 곳이어야 하는 데, 타인을 의식하여 타인이 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느 TV 프로에 나와 “거제시가 한눈에 보이는 산기슭 쪽방집을 100억 준다 해도 팔지 않겠다.”고 강조했던 할머니의 말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타인의 관점이 아닌 나 자신의 관점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메시지다.

타인이 보기에 좋은 곳이 명당이 아니라, 나 자신이 좋은 곳을 볼 수 있는 그곳이 진짜 명당이다.

타인이 보기에 좋은 나 자신이 명품이 아니라, 타인이나 나 자신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나 자신이 명품이다.

[단상]
혹시 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진짜 명당이 아닌지, 꼭 점검해보는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