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

2020-08-05     김광부 기자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전13:6) 2020.08.05

(2020.06.20(토)

“과연 그럴까.  과연 그 미소 아래서 중생들의 온갖 번뇌가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부처가 신이 아니고 인간일진대 그렇게 태연자약한 얼굴로 요지부동 침묵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중생들이 배고파서, 병들어서, 옥에 갇혀서, 권력과 금력 가진 자들에게 억눌려서,신음하고 있는데…… 그렇게 빙그레 웃고만 있을 수 있을까?”

김성동 저(著) 《만다라》  65-6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소설 《만다라》는 소위 땡중인 지산과 진지한 수도승인 법운이 허위에찬 세상 속에서 참다운 구도의 길을 찾는 내용입니다. 어느 날,지산이 나무토막을 깎아 부처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운이 보니 이제껏 보았던 부처와 너무 달랐습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부처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번뇌에 시달려 이지러진 부처의 얼굴이었습니다. 놀라고 있는 법운에게 지산이 그 연유를 설명합니다. “적어도 석가가 인간이었고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라면, 하나쯤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그리하여 팔만사천 번뇌에 싸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의 불상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야?

함께 울고 함께 웃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부처를 그대는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66쪽) 지산은 지금 부처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예수님을 묵상하는 듯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묵상하면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가시관에 찔린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처참한 주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바로 그 얼굴이 우리의 얼굴입니다.  버림받고 실패하고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위로를 받는 것은 그가 지닌 하늘의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상처와 고통을 당하신 그 사랑 이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한재욱 목사/강남 비전교회>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
(2020.06.2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