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다가오는 斷想] 외미내안(外美內安)

 金杉基

2020-10-21     성광일보
김삼기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아내는 아들의 속옷은 물론 티나 바지를 사도 항상 라벨을 떼어주었다.

속옷의 라벨이 피부에 닿는 것을 싫어하는 아들이 티나 바지에 붙어 있는 라벨까지도 신경 쓰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엉덩이 왼쪽 부위가 간지러워 피부연고를 발랐는데도 계속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원인을 찾아봤더니, 셔츠에 붙어 있는 딱딱한 라벨이 주범이었다.

아들의 어린 시절 라벨과의 전쟁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피부 치료를 위해 속옷이 담겨 있는 옷장에서 셔츠를 꺼내 라벨을 다 떼어냈다.

라벨을 떼면서 모든 셔츠의 라벨이 규정이라도 정해놓은 것처럼 왼쪽에 붙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옷의 라벨은 사이즈, 재질 세탁방법 등이 적혀있는 작은 천으로, 주로 옷 안쪽에 붙어 있다.

미관이 중요하고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외모지상주의시대를 살아왔던 인류에게 작은 천 조각의 라벨을 옷 안쪽으로 집어넣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속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피부 건강까지 챙겨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이제 라벨이 굳이 옷 안쪽에 숨어 피부에 기생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래서 최근 젊은 층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라벨이 옷 바깥쪽으로 나와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무바느질 속옷이 등장하여 홈쇼핑 고객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인류의 가치가 아무리 내실을 내세운다고 해도 공동체 속의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게 인류의 기본 방향이다.

그래서 라벨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는 겉옷에는 라벨을 안쪽에 달고, 피부에 영향을 주는 속옷의 라벨은 바깥쪽에 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작년에 단상에서, 대중사회는 개인의 의견이 대중의 가치에 묻히면서 개인이 피해를 봐도 참아야 하지만, 다중사회는 개인의 가치가 다중의 가치에 묻히지 않고 다 수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오늘 단상을 쓰면서 속옷의 라벨을 안쪽에 달아 라벨이 피부 감각을 자극하더라도 참고 살아왔던 대중사회의 근대인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속옷의 라벨은 바깥쪽에 달아 편안함을 추구하고, 겉옷의 라벨은 안쪽에 달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다중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에 외미내안(外美內安)까지 갖추어 가는 다중사회의 현대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속옷만큼이라도 라벨이 다 밖으로 나오고, 무바느질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아들에게 전화해서 지금도 라벨을 떼느냐고 물어봐야겠다.

[단상]
라벨을 떼고 난 후, 피부질환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