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역사의 땅을 밟다

 백원기

2021-04-19     성광일보

2006년도에 들렸던 안성 죽산의 모습은 그냥 그대로였다. 그럴듯한 아파트 단지 하나 들어서지 않고 이렇다 하게 큰 공공건물도 없는 그냥 그 모습이었다. 그러나 도시화는 되지 않았지만 꾸밈없는 옛 모습에 정이 간다. 맑은 공기에 밝은 햇볕 그리고 매연과 소음도 없어 말 그대로 청정 지역이다. 죽산 버스터미널도 그대로 있어 뜨막한 시골 버스 정거장처럼 한적하여 졸음이 밀려오고 차라리 건물 밖이 시원하다. 2006년도에는 우리 두 내외와 여동생 내외 4명이 칠장산, 칠현산, 덕성산, 도덕산, 관모봉, 을 뒤지고 집사람과 둘이서는 마이산(망이산)과 영창대군 능을 지나 마옥산에 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며 오늘 오르려는 비봉산(해발 372)은 너무 낮아서 오르려고 마음도 먹지 않던 산인데 오늘은 역사의 현장을 찾아 진입도 용이한 이 산에 오르려 한다.

죽산의 옛 이름은 죽주이다. 죽산면 매산리 비봉산에는 죽죽 산성이 있다.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본성은 1.7k이고 외성 1.5k, 내성 270m로 세 겹의 석성이 보존상태가 좋다. 임진왜란 때 격전지로 왜군에게 빼앗긴 죽주산성을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에 성공하자 왜군은 더 이상 용인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된 죽주산성은 몽고군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의 전적이 빛나고 있는 역사 깊은 산성이기도 하다. 소나무와 침엽수가 울창한 비봉산은 역사 속에서 한 바퀴 돌면 3시간쯤 걸리는데 길은 돌 하나 없는 고운 산길이다.

372m 정상에는 만병에 효능이 있다는 질경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나물 캐는 아낙들은 욕심날 만도 하다. 물도 좋아 울창한 숲 속에서 흘러나오는 약수는 물맛도 좋고 차서 소름이 돋는다.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하나도 막힘이 없이 내려다보여 지형적으로 산성이 구축될 장소임을 실감하게 된다. 무더운 날이라도 야외 돗자리를 펴고 누우면 하루 종일 잠잘 것 같은 너른 잔디밭이 아름답고 아늑하다. 하산 완료 후에는 추어탕을 먹었는데 미꾸라지를 갈아서 채를 치고 탕으로 끓여 나오는데 칼국수를 듬뿍 넣고 매운듯한 맛이 일품이다. 도시의 추어탕 맛이 아니었다. 맨 나중에는 밥 한 공기를 비벼먹는데 배가 너무 부르다. 식당 아주머니께서 따라 나오시며 또 오시라고 우리에게 인사까지 해주신다. 큰길을 건너 터미널에서 매표를 하니 16:45분 버스였고 한 여름에 기우는 해가 찌는 듯이 더워 머물다 내려온 산그늘이 다시금 그리워진다.

 

백원기 <프로필>

*1959년해병주보300호기념공모시"해병의얼"당선.
*2005년월간시사문단시로등단.
*한국문인협회회원.
*광진문인협회회원.
*시와그리움이있는마을작가.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회원.
*시집 《함께 있어도 그리운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