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 詩마당] 저녁의 허공

김종태 시인, 성동문인협회 회원

2021-09-28     성광일보

                         저녁의 허공
                                           김종태

라일락 향기를 피우고 은사시나무 이파리를 물들이고 치자 꽃을 다듬어 온 톨게이트 옆 꽃집 노인의 느린 걸음이 미닫이문 앞에서 균형을 잃는다

팔 없는 팔이 아프다는 중얼거림이었을까 마음 없는 마음이 슬프다는 읊조림이었을까

팔 없는 옷소매는 바람 없이도 춤을 추지만 저녁의 허공은 달빛이 내려야 밤을 이야기한다

팔 없는 옷소매는 땀 없이도 젖어가지만 저녁의 허공은 병 없이는 늙어가지 않는다

팔 없는 옷소매는 슬픔 없이도 노래하지만 저녁의 허공은 경적 없이는 공명하지 않는다

허공의 관절마다 허공의 새 뼈가 자라나 없는 손목으로 달그림자를 만지면 가로등 불빛이 창가로 휘어진다

꽃집 앞으로 다가서고 있는 횡단보도의 먼지 구름, 노인은 이미 다리 하나를 죽은 신호등 위에 걸쳐 놓았을 것이다

톨게이트 앞 시동을 멈춘 듯 차들은 저녁연기처럼 흘러간다 시간을 잃고 점멸하는 신호등을 바라보지 않는 채로 비행운은 허기진 비둘기의 날갯죽지 뒤로 사라져 간다

호수 쪽으로 기울어지는 슬레이트 지붕, 그 속에 저장된 압점(壓點)이 환상처럼 웅얼거린다

 

김종태
시인, 성동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