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 詩마당] 결명자 한 줌

김현주 /시인

2021-11-10     성광일보

                결명자 한 줌
                                  김현주

집에 불이 난다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폭염의 정오를 지난다
뜨거운 화두를 가지고 뜰에 핀 장미를 지난다

금붙이도 아닌, 천만금과도 바꿀 수가 없는
꼬투리 속에서 작은 알맹이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어머니의 어금니를 앙달물게 했던 것

손끝마다 아픈
내 어머니 숨결이 걸어 나오는 빛바랜 결명자 한 줌

꼬투리를 열고 지아비를 꺼낸다
꼬투리를 열고 아들 넷을 꺼낸다
밤하늘로 남편을, 아들 넷을 보내고
어린 딸 셋 위에 멈추지 않던 바쁜 걸음들

쌉싸래한 결명자를 유난히 진하게 유려 마시던 어머니

쪼그리고 앉아 꼬투리를 열고 바닥에 깊숙이 박힌 노래를
꺼내던 어머니 냄새를 따라 차를 마신다
낡은 찻잔에 깊숙이 밴 검은 눈물의 노래

오랜지빛 장미향이 어머니 별자리로 오르고 있다

김현주

- 시인

-성동문입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