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 詩마당] 가을 택배

유병란 / 성동문인협회 회원

2021-11-29     성광일보

            가을 택배
                           유병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가 다니셨던
작은 암자 스님이 택배를 보내오셨다
알밤과 호박, 말린 산나물을 담은 봉지들이
절 마당 햇살과 바람을 몸에 두른 채
오밀조밀 담겨 있었다

절담을 타고 올라 느릿느릿 몸을 불렸을 튼실한 호박과
대웅전 염불소리 들으며 영글었을 윤기 나는 알밤
친정엄마 같은 노스님 손길까지
작은 암자의 풍성한 가을이
택배상자에 가득 담겨 왔다

콧노래를 부르며 알밤 껍질을 벗기다 순간 멈칫했다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작은 애벌레 한 마리
껍질 어디에도 흔적이 없는데 어떻게 뚫고 들어갔을까?
애벌레가 있는 곳을 칼로 도려냈다

얼마 전 나도
애벌레처럼 숨어들어 나를 아프게 하던 친구를
도려낸 적이 있다 휑해진 가슴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잘 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또 바뀌면
수많은 시간이 머물다간 그 자리에
박꽃처럼 하얀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유병란
성동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