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와 숯 파는 곳으로 유명했던 뚝도시장, 시장 모습을 바꾸는 오늘의 청년 상인들

[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37) 뚝도시장

2021-12-13     서성원 기자

◆전통시장들이 그렇듯 뚝도시장도 옛날 같지 않아

나는 전통시장을 가끔 갑니다. 지난 11월에는 모란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생들기름을 짜기 위해서입니다. 여름에는 경동시장에 갔었습니다. 모란시장은 전국 최대의 5일장이고, 경동시장은 전국 최대의 전통시장이죠. 
그렇다면 뚝도시장은 어떤가요. 위치로 볼 때,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입니다. 걸어서 10분 거리. 그런 만큼 나에게 익숙한 곳입니다. 내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자주 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일 때문에 뚝도시장을 찾곤 했었습니다. 
나만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성수동에는 이마트가 있고 본사도 있습니다. 이마트 성수점은 이마트 매장 중 매출액 순위가 7위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매장이 2008년에 들어왔으니 뚝도시장 이용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집을 볼까요. 아내는 웬만한 것은 이마트에서 삽니다. 채소와 과일 생선 같은 농수산물은 아파트에 매주 알뜰시장이 열립니다. 뚝도시장을 찾을 일이 좀처럼 없습니다. 우리 집만 이럴까요. 
그렇다고 이용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뚝도시장은 세상만 탓하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뚝도시장은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뚝도시장번영회(회장 김미정)에 청년상인들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청년 상인들이 뚝도시장을 새롭게 바꾸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얘기하려 합니다.

◆ 조선시대 뚝섬의 시장, 일제 강점기 그리고 뚝도시장

뚝도시장은 한때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이었다고 한다. 사실일까? 아닐 것 같은 데 '뚝도시장'을 소개할 때면 이 말이 줄곧 따라다닌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뚝도시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서울의 3대 시장에 든 것은 언제쯤일까.
16세기에 한양 도성 밖에 장시가 생겨났다. 이때 뚝섬에도 시장이 있었을까. 17세기 한양 도성 안에 텃밭이 많았다고 한다. 
18세기에 들자 채소가 상품화된다. 왕십리는 미나리 재배지역이고 뚝섬은 배추를 많이 재배한다. 배추를 재배했으면 내다 팔아야 한다. 어디로 가져갔을까. 도성 안으로 들어간다. 18세기 후반에 뚝섬에 '뚝섬시목전'이 생긴다. 시목전(柴木廛)은 땔감 가게를 말한다. 뚝섬은 한강을 따라 내려온 목재와 시탄(숯)의 집산지가 된 것이다. 
뚝섬에 숯을 저장하는 탄고가 많아서 '숯탄골' 또는 '탄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숯 판매가 활발해서 '숯광골'로도 불렸다. 뚝섬의 시장상인들은 목재, 시탄을 매점해서 폭리를 취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혹시 이때가 뚝도시장의 전성기였을까. 
일제 강점기에도 목재와 땔감이 뚝섬에 집중된다. 땔감과 목재를 파는 점포가 40여 개, 이때 역시 좋은 시절이었다. 그 외에도 뚝섬에는 채소밭, 포도밭, 유원지, 나루터가 있었다. 
해방이 되고 1960년대, 성수동은 채소밭이 많았다. 뚝섬의 농부들은 오이 양배추들을 가꿔서 경동시장이나 신당동 중앙시장에 팔았다.

 

◆ 뚝섬갈비 

뚝섬에는 '뚝섬갈비'가 있다. 뚝섬경마장이 있었던 시절에 호황을 누렸고 현재까지도 뚝섬 갈비골목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뚝섬갈비'에는 숨겨진 얘기가 있다. 옛날에 '뚝섬갈비'는 돼지갈비가 아니었다. 배추김치였다. 뚝섬에는 예로부터 채소밭이 많았다. 특히 배추가 많이 났다. 그래서 뚝섬 사람들은 '배추김치'를 먹고서 '뚝섬갈비'를 먹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배추김치를 애칭으로 '뚝섬갈비'라고 했다. 이 내용은 21년 6월 4일, 성수동 토박이 정진섭(태진운수 대표)씨가 증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