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늘 새벽

최학용 수필가, 성동문인협회 이사

2023-02-14     성광일보

오늘도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깼다. 거의 뜬 눈으로 자다 말다 했으니 정신이 몽롱한 상태다. 옛날 어릴 적 할아버지 소죽 쑤시는 아궁이 앞에 새벽부터 같이 앉아 고구마나 밤 등을 구우며 조잘대던 나는 어려서도 잠 없는 아이로 통했다. 무슨 애가 잠이 없느냐고? 동네 어르신들께서도 성화하셨다. 집 뒤 우람한 밤나무서 떨어지는 아람도 내가 다 주었었다.

늙어가니 잠이 더 없어졌다. 고작 세 시간 자고 아파트 1, 2단지를 다 돌았다. 몇 바퀴째다. 어쩜 형제가 모두 잠의 습관이 다른지? 바로 내 아래 동생은 초저녁에 눕기만 하면 쉽게 잠들고 내처 자기를 9시간 정도.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게 잠 잘 자는 사람이다.

나는 길게 자야 고작 세 시간 정도 그도 못 잘 때가 많다.
 비몽사몽간의 몽롱한 상태의 새벽 시간 누워서 눈이라도 감고 쉬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냥 일어나 움직인다. 이를테면 못된 성격일까? 나가서 걷고 무슨 일이든 하지 누워서 쉬는 성격은 더욱 아니다.

어머니 말씀이시다. 자랄 적 심부름을 시키면 오빠 언니는 어느 댁에 가져다드리라고 하면 가져다드리고 왔는지? 아무 보고도 없고, 나만 다녀온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곤 했단다. 예를 들면 그 집에 누구는 어떻게 했고 식구는 누구누구가 있었고 그들과 나눈 대화 내용도 전하는 자상 함을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한 배에서 나온 애들도 어쩜 이리 다르냐고! 그런 성격에 어긋남이 없으니 그러고 사는 나 자신의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할까? 내가 나를 볶는다고 여기면서도 무디게 산다는 일이 나에겐 먼 나라 얘기 같다.

무디게 무관심 속에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나도 그렇게 하루 정도 체험이라도 하고 싶다. 주여! 하나님을 찾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의 건강이 무너진 상태다. 불면증에 무기력증 아프고 쑤시는 부 위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생활은 약 없이 편히 잠들고 깨는 무딘 일상이다. 옛날 같으면 지금 내 나이가 상상도 못 할 나이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이를 잊고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살고 싶다. 그런 일상이 행복한 삶 아닌가? 오늘 새벽에도 아파트 1, 2단지를 부지런히 돌았다. 아무도 없는 무서우리만치 조용한 400년 된 우람한 은행나무만이 우뚝 선 곳! 오늘도 그 기를 받아 뚜벅뚜벅 일상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