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 : 次韻許正言見寄 / 근제 안축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

2014-06-28     서울동북뉴스

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 : 次韻許正言見寄 / 근제 안축

고려말엽 몽고 제국에 들어서면서 원나라의 연호를 쓰는가 하면 다음 보위에 오를 원자가 원나라의 풍습을 따랐다. 그래서 임금의 칭호 앞에 [忠]자를 붙였다. 그 때 원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관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시인은 신흥 유학자로 새로운 제도와 풍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저항도 만만했을 것이다. 이런 개혁적인 뜻을 갖고 충숙왕 복위 원년에 파직과 복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심회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韻許正言見寄(차운허정언견기) / 근제 안축

북산이문 펴서 읽고 부끄럽게 여기었네
야박한 풍속인데 내 가르침 누가 따르랴
폐단이 난무한 세상에 구할 계책 없구나.

燈前優讀北山移 自愧歸休已太遲
등전우독북산이   자괴귀휴이태지
俗薄何人遵我敎 弊深無計救此時
속박하인준아교   폐심무계구차시

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次韻許正言見寄)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이다. 위 한시문을 의역하면 [등불 앞에서 근심해 북산이문 책을 읽고 / 돌아와 쉬니 너무 늦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네 // 풍속이 야박해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리오 / 폐단 많은 세상인데 이 시절 구할 계책 하나 없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허정언의 견기에 차운함]으로 번역된다. 허정연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북산(北山)은 중국 남경 북쪽 산이고, 이문(移文)은 글의 문체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포고문, 통고문과 비슷한 글이다. 북산이문은 공치규(孔稚圭:447~501)가 지었는데 고문진보에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후 풍속의 야박함을 꾸짖고 있음이 시적인 배경이 된다.

시인은 북산이문에 취했던 모양이다. 이 글에 푹 빠졌던 시인은 잠시 쉬면서 너무 늦게 깨닫는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세상을 구할 계책을 생각해 본다. 고려말의 어수선한 세상에 혼탁할 대로 혼탁함에 비애를 느꼈던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풍속이 야박한데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겠는가라고 비관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얼마나 많은 폐단 속에 살았던가를 짐작하는 대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을 구할 계책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화자의 몸부림을 시문 속에서 찾게 된다. 역설적인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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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작가는[1권 2장 外 참조]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후기 문신이다.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어 문명이 높았다. 흥녕군에 봉하여진 뒤 죽었다. 순흥의 소수서원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정이고 저서로는 [근재집(謹齋集)]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燈前: 등불 앞. 優: 근심하다. 讀: 읽다. 北山移: 북산이문 책. 自愧: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다. 歸休: 돌아와 쉬다. 已太遲: 이미 너무 늦다. // 俗薄: 풍속이 야박하다. 何人: 어느 누가. 遵: 따르다. 我敎: 나의 가르침. 弊深: 깊은 폐단. 無計救: 구할 계책이 없다. 此時: 이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