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증원 문제가 연일 뉴스를 타고 있다.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하겠다 하고, 의사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겠다 한다. 그러더니 오늘 천여 명이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한 건 나만 그런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하고 있는데 걱정이 앞선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인구대비 의사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그리스라고 한다. 인구 천 명당 6.3명인데 우리나라는 2.6명, 멕시코와 함께 최하위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이익과 관계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날짜가 잡혀 있던 암환자의 수술을 취소한다거나 산달인 임산부의 진료일을 연장한다는 것은 책임 있는 자의 모습이 아니다. 의사라면 우리 사회의 많은 계층 중 여러 면에서 안정적인 부류 아닌가. 나름대로 봉사정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텐데….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지 싶다. 절박한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정부를 협박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의사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나만의 생각일까. 나처럼 건강하지 못해 병원과 의사를 절박하게 필요로하는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몇 달 전 가슴 철렁한 일이 있었다. 혈액검사 결과 혈액의 산소 수치가 기준치보다 너무 낮다는데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계속 다니고 있는 병원 원장님이 큰 병원에 가 보라며 소견서를 써 주는데, 하필 진료과가 '혈액종양내과'였다. 거기다 이번 검사에서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골수검사까지 받아봐야 한다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내가 암이라도 걸린 걸까? 친정아버지와 동생을 암 때문에 다시는 볼수 없는 곳으로 떠나 보낸 후, 극심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이제 겨우 안정하려는데….
1박2일 입원해 검사를 받기로 한 날이다. 입원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차 안이 적막강산이다. 자동차 문으로 바람 한 점 고개디밀 틈조차 없는 것 같다. 평소 말 잘하는 남편도 검사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입을 닫았다.
그렇게 우리는 응급실로 향했고, 서류에 서명하고 입원실을 안내받고 나왔다. 자동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중 옆에서 갑자기 "열려라, 참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남편이 왼손에는 짐을 들고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고 발을 쿵! 구르며 외친 말이었다. 앞에 서기만 하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인데, 그곳에 있던 서너 명의 보호자들과 직원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스르륵 열린 문을 나오며 웃음은 멈추지 않고 눈물이 났다. 자동문 앞에서 웬 '폼생폼사'냐고 했더니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고 한다. 입원실로 향하는데 머릿속을 비우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기억들이 다시 하나 둘 제 위치를 찾아가 자리 잡는 것 같았다.
병실이 마치 은하계 어딘가 뚝 떨어진 듯한, 일반 병실과는 멀리 떨어진 13층이다. 고립과 소외감을 느끼며 밤을 꼬박 새울 뻔했는데, 남편 덕분에 긴장도 풀렸고 책도 읽으며 마음 편하게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걸, 가족을 하늘나라로 보낸 슬픔과 놀라움에 덜컥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결과는 다행히 골수검사를 하지 않고도 일반치료와 약물치료로 가능하다고 해서 안심했다.
나는 자주 건강에 발목을 잡혀 휘청거린다. 중년에 접어들었으니 이젠 건강 좀 챙기며 살라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우리곁에 병원과 의사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의사가 집단 사표를 내다니, 마음이 무겁다.
'열려라, 참깨'는 천일야화 중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 나오는 주문이다. 도둑들이 보물을 숨겨 둔 동굴 앞에서 이 주문을 외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알리바바는 우연히 도둑 몰래 이 주문을 엿듣게 되고 동굴 속의 많은 보물을 취해 부자가 된다. 세상 어딘가에 '건강'이라는 보물을 감춰 둔 동굴이 있다면, 의사와 환자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보물을 감춰 둔 동굴이 있다면, 나도 그 문 앞에 서서 아주 큰 소리로 목청껏 외치고 싶다. "열려라, 참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