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은 서울시 시우회 광진구의회에서 광진구와 자매결연을 맺은 태백시를 방문하여 관내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환자들을 위문하러 가는 날이다. 우리는 이른 아침 광진구청에서 지원받은 위문품을 싣고 출발했다.
올림픽대교를 건너 강동구 암사동 쪽으로 가다 보면 한강변으로 구암서원 터(구암정)가 나온다. 이곳은 1667년에 건립된 광주군 구천면 최초의 서원이다. 이 지역 유생들은 여기서 유교적인 학식과 교양을 쌓아 과거에 응시하여 관료로 입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암서원은 1871년 고종 때 전국 서원철폐령으로 사라지고, 1898년 그 자리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유허비가 남아 있으며, 지금은 구암정을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하남시를 지나면서 하남시 동쪽 한강변에 솟아 있는 검단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운길산(雲吉山), 예봉산(禮峰山)과 이웃해 있다.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여기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고 있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사방의 전경이 시원하게 열리고 서서히 정상에 이르는 길이 매우 다채롭다. 이 검단산은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라 전해진다.
광주시 초월면 고속도로변에는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묘가 있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로 용모가 아름답고 성품이 뛰어났으며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으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못하고 친정에 옥사(獄事)가 있는 등 연속되는 불운을 시를 쓰며 달래다가 선조 22년(1589) 27세에 생을 마쳤다. 그녀는 섬세한 필치로 여성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인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룩하였다.
주변 경관과 묻혀 있는 역사를 더듬는 사이 차는 치악산 골짝을 올라와 치악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달려 태백 시내를 지나 문곡동에 있는 '태백시실버요양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위문품과 필자의 책 《망향의 언덕》을 전달했다. 그리고 "쌀은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하지만 책은 사람의 정신을 튼튼하게 만드는 재료다. 그러니 책을 책 꽂이에 꽂아만 놓지 말고 적의 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태백준령을 넘어 오늘의 여행 목적인 복지시설도 방문했으니, 지금부터 태백시의 명소 몇 곳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태초에 하늘나라 하느님(桓因)의 아들인 환웅천왕(桓雄天皇)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았다.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하느님의 아들이 내려온 산을 하늘로 통하는 길로 보았고,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와 같은 곳으로 믿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 환웅천왕이 내려온 그 산에 올라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 신비하고 성스러운 신산(神山)을 태백산이라 이름하여 영험스러운 성역(聖域)으로 숭배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태백산 밑에 형성된 장성읍과 황지읍이 석탄 수요의 증가로 인구가 늘자 삼척군에서 벗어나 1981년 7월 1일 시로 승격되면서 합하게 되었는데, 두 읍이 모두 태백산 밑에 있기에 태백시라한 것이다. - 다음 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