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함께 진화한 고대 인류
돌과 함께 진화한 고대 인류
  • 성광일보
  • 승인 2016.01.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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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우/고문∙편집위원
10만년전에 출현한 완전한 인류의 조상인 호모 싸피엔스인 네안테르탈인이 거주했던 주거지나 동굴 등에 남겨진 동물의 뼈들과 동굴내부의 생활 상태를 조사해본 결과 약 6만년 이전에는 불과 석기를 사용하 였지만 특별한 정신적 의식이 없이 다른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 생을 이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6만년전부터 정신적 사고(思考) 기능과 간단한 장례의식을 수행하던 호모 싸피에스 싸피엔스 고대 인류는 4만년전부터 동물에서 진화되어 의식세계를 갖게됨으로서 자연이 만든 대지와 모든 만물을 경외심(敬畏心)을 갖고 보기 시작하였다. 특히 자연이 만든 사람과 닮은 거대한 바위라든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거대한 솟은 바위들을 보면 처음에는 자연 그대로의 바위들을 신앙의 대상으로 경배하였다.

▲ 공주시 상신리 입석(돌장승)
2만전쯤 부터 바위나 동굴의 벽면에 여러 가지 동∙식물이나 기하학적 무뉘를 조각하여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1만년전부터 농경(農耕)의 발달로 더욱 바위나 돌로 무기와 생활 도구를 정교하게 제작 사용하게 됨으로서 돌을 다루는 기술이 높아지고 돌을 활용하는 석기(石器)문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석기문화가 보편화되고 친숙해지면서 높은 산에 있는 기기묘묘하고 거대한 바위 덩어리와 평야에 솟아있는 신비한 형상의 바위돌에 의미를 부여하고 정신수양의 상징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부족의 복을 빌고 마을의 안녕을 위한 경건한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또한 씨족사회 원시 부족의 마을 어귀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의 돌장승 또는 자손의 번창과 마을의 풍요와 무사태평을 기원하여 숭배의 대상이된 남근석(男根石)과 마을의 경계를 표시하는 입석(立石) 또는 돌장승 등이 탄생하게 되었다. 부족 공동체의 발전에따라 권력을 갖고 있는 통치자들의 욕망은 거대한 자연석을 운반하여 가공하거나 그대로 옮겨와 권위의 상징으로 삼고자 하였다. 거대한 돌로 만든 이스트섬의 거인상이나 지중해 코르시카섬의 영혼상, 안데스 산맥의 티아우나코 신전의 거대한 석상, 고조선의 거대한 고인돌 무덤 등이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의하여 탄생되어 고대 거석문화가 시작되었다.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입석(돌장승)은 마을이 형성된 고대(古代)로부터 마을 입구에 마을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이 입석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방추형(方錐形)으로 되어있다. 이 입석을 상신리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마을주민들은 ‘장성바위’라고 부른다. 또한 매년 입석앞에서 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바위는 영원불변의 성질을 갖고 있어 원시 종교에서는 바위가 마력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자연을 창조한 절대자 또는 신과의 매개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잠재의식속에서 자리잡은 신성한 바위는 커다란 부족 공동체의 제의를 위한 신전이나 사후세계를 위한 무덤의 축조에 사용하게 되었다.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커다란 바위에 부족의 신(神) 또는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성인 들을 조각한 석상을 만들기도 하고 거대한 바위굴을 파서 신전이나 교회를 만들기도 한다.

▲ 아차산 쌍머리이무기 바위

광진구 아차산에도 바위와 관련된 전설이 많이 있다. 고구려정 주변에 있는 벌렁바위, 두꺼비탈바위와 쌍머리이무기 바위가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나라의 선년가 옥황상제의 요강을 엎질러서 한강주변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고 이 죄로 선녀는 두꺼비탈을 쓰고 아차산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더가 사냥꾼을 만나 사랑하게 되어 같이 살았다. 사냥꾼은 보름달 밤에 선녀를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려는 이무기(용이 되려다 못된 큰뱀)가 나타나자 이를 죽이고저 활로 쏘았다. 그러나 머리 하나 밖에 맞추지 못해서 이무기가 선녀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버렸다. 그때 선녀가 벗어놓고간 두꺼비탈이 남아서 두꺼비탈 바위가 되었고 이무기를 잡지 못하여 선녀를 빼앗긴 사냥꾼이 맥이 빠저 나자빠진 것이 벌렁바위이다.

또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가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전설을 품은 온달장군의 주먹바위와 평강공주의 통곡바위도 있다. 온달장군은 미천한 신분에서 평강공주를 만나 부마가되었다. 이에 큰공을 세우고저 신라에 빼앗긴 한강 일대의 땅을 찾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겠다던 온달장군의 의지는 불끈 쥔 주먹바위로 남아 있다. 사랑하는 남편의 주검을 찾아와서 통곡하는 평강공주의 사랑은 통곡바위 돌로 굳어져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산과 들에 있는 돌과 바위는 인류와 공생하면서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귀중한 자연 유산이다. 우리는 아차산이나 용마산을 오르면서 밟고 만지는 돌과 바위의 소중함을 느끼고 바위가 갖고 있는 깊은 뜻을 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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