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수 칼럼> 현대판 연호정(煙戶政)과 제조노비(提調奴婢)
<한정수 칼럼> 현대판 연호정(煙戶政)과 제조노비(提調奴婢)
  • 성광일보
  • 승인 2016.07.12 18: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정수 / 건국대 사학과 교수

▲ 한정수 교수 / 건국대 사학과
왕조사회에서 권력자는 대체로 권신(權臣)으로 표현된다. 권신이 강고한 권력시스템을 마련하면 그 밑의 추종세력들은 각기 거점을 마련하고 또 다른 권력의 축을 마련한다. 왕조사회의 경우 이는 비정상적 정치시스템에 해당한다. 하지만 권신은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를 권신의 권력장이라 한다면 그 안에 추종세력의 권력장이 다시 자리잡곤 한다.

그리고 이들 간에는 대체로 비정상적 불법적 협력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은 어느새 전체 정치와 사회, 경제 등을 썩어 곪아터지게 만든다. 이러한 일은 역사에서 왕조 교체기나 사회 전환기 속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달콤한 현실에 취하여 권력의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최근 국회의 핫이슈 중 하나는 여야를 막론하고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일이다. 친인척의 범주에 있다느니 범주가 아니라 남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니 하면서 해명도 이어졌다. 이를 막기 위한 법안 제출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에 의한 부정과 부패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진정 이 시대 최고 엘리트들인 그들이 몰라서 벌이는 일일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는 것이 올바른 해명일까? 이들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지나친 자기 온정주의에 빠진 사람들에 불과하다. 더구나 입법과 감시의 일을 맡은 국회가 자기 온정주의에 빠지다니!

역사는 이러한 관행으로 치부된 국회의원 보좌진 편법․불법 운영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할까? 이러한 일은 역사에 대서특필되기 마련인데, 고려 말의 경우를 보자. 드라마 정도전으로 더욱 유명해진 권신 이인임(李仁任, ?~1388)은 세칭 ‘이씨고양이〔李猫〕’라 불릴 정도로 간신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권력장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의 일대기를 보면 흥미로운 표현이 있다. 연호정(煙戶政)과 제조노비(提調奴婢)가 이에 해당한다. 연호정은 이인임이 대간(臺諫)․장수(將帥)․수령(守令)을 모두 자신의 친인척〔親舊〕로 뽑고 시장의 공장(工匠)이라도 연줄이 있으면 벼슬을 주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부른 풍자적 표현이다. 굳이 해석한다면 ‘굴뚝 인사’ 정도가 될 것이다. 제조노비란 이인임의 힘으로 관직에 오른 자들이 남의 전민(田民)을 빼앗는 등 전횡을 일삼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붙인 표현이 된다.

역사에서는 이처럼 이인임에 대해 ‘이묘’라 칭하고 그가 행한 인사를 ‘연호정’, 그 추종세력을 ‘제조노비’라 풍자하고 비하하였다. 참고로 이인임은 고려시대 명신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의 손자이며, 그의 형 이인복(李仁復, 1308~1374)은 공민왕의 충신이었다. 한마디로 명문가 출신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인사(人事)를 전횡하면서 그의 권력은 급전직하였고, 죽은 뒤에는 결국 공양왕 옹위세력으로부터 ‘참관저택〔斬棺瀦宅〕’의 처벌 요청이 있게 되었다.

굳이 역사에서 찾지 않더라도 세간의 민심은 이미 연호정을 행한 국회의원과 제조노비라 할 보좌진들에 대해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현대판 ‘연호정’은 국회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법을 세우는 사람들이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민심은 어찌 변할까? 이인임의 죽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을 참조하면 답이 될지 모르겠다.
“사람이 처형하지 못하니 하늘이 곧 그를 죽였다.〔人不能誅 天乃殛之〕”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창간일 : 2010-10-12
  • 회장 : 조연만
  • 발행인 : 이원주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서울로컬뉴스
  • 통신판매 등록 : 제2018-서울광진-1174호
  • 계좌번호 : 우체국 : 012435-02-473036 예금주 이원주
  • 기사제보: sgilbo@naver.com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