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三昧) 체로 거른 ‘깨달음의 노래’
삼매(三昧) 체로 거른 ‘깨달음의 노래’
  • 성광일보
  • 승인 2019.07.11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옹거사和翁居士, 이계묵李啓默

심우도(尋牛圖)

(牛) 타고 집에 돌아오다

소타고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가네!

오랑캐 피리 소리
저녁노을에 실어 보내고,

한 박자
한 곡조 한량없는 뜻이로다.

곡조 아는 것을 어찌
입술과
이 두드림이 필요하랴!
騎牛이리欲還家 羌笛聲聲送晩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脣牙
                       <六騎牛歸家頌>

이 게송은 길든 소타고 집에 가는 노래입니다. 첫 구의 이리는 여유롭게 소가 가는 것을 말 한 겁니다. 우린 어릴 때 소 많이 타 봤습니다. 시골 농촌 이었거든요. 길든 소는 참 순합니다. 어린애가 타도 잘 갑니다.

소 탄 목동이 말 안 해도 스스로 알아서 집으로 가는 모습을 곽암스님이 시적(詩的)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이구(二句)에서는 소탄 목동이 피리를 멋들어지게 불어 됩니다. 여기서 강적(羌笛)은 오랑캐 피리를 말합니다. 중국 한족(漢族)들은 중화사상(中華思想)이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동서남북(東西南北) 민족을 낮추어서 오랑캐라고 했습니다. 곽암스님은 그런 뜻에서 차용한 말은 아닙니다. 서쪽지방은 목축업을 주업으로 하니까. 서쪽 지방이 서융(西戎)이라 해서 강적(羌笛)이란 말을 쓴 것입니다. 목동이 피리를 멋들어지게 부는 때가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집으로 가는 시간 아닙니까? 그래서 피리소리를 저녁노을에 실어 보낸다고 한 것입니다. 삼구(三句)는 피리 불고 난후 흥에 겨워 손벽치고, 노래 부른 것을 말한 것입니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은 즐거워야 합니다.

그 흥이!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서 한량없다 했습니다. 목동이 왜 이렇게 좋겠습니까? 소 다 길들여서 그렇습니다. 끌고 당길 일이 없지 않습니까? 길이 들기까지는 소도 힘들었겠죠. 목동도 마찬가지구요. 쉴 새 없이, 늘 고삐를 쥐고 끌고 당겼으니까 오죽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흥이 나겠습니까?

그 심정을 목동이 소타고 손 벽치고, 노래 부른 걸로 표현 한 겁니다. 그래서 곽암스님이 기우귀가(騎牛歸家)의 장르를 만든 것이다. 지음(知音)은 중국고사(中國 故事)에 나온 말입니다. 옛날 진(晉)나라에 백아(伯牙)라는 거문고 잘 타는 달인(達人)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아(伯牙)는 고국(故國)인 초(楚)나라에 돌아와서 심금을 달랠 겸 거문고 줄에 마음을 실어 탔는데, 그 거문고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무꾼 종자기(鍾子期)였다는 것이다. 형색은 나무꾼 이지만,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의중을 알아 맞추니 백아가 탄복을 하여 지음지우(知音之友)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맺고 일연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후 백아가 약속한 날짜에 종자기를 찾아갔으나 그는 이미 죽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아는 종자기 묘에서 마지막 거문고를 타고 거문고 줄을 끊어(伯牙絶絃) 깨버린(破琴)후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고사(故事)이다. 곽암스님이 이 고사를 차용한 뜻이 있습니다. 불교 선문사(禪門事)와 세속사(世俗事)는 다름을 말하기 위해섭니다. 이 사구송(四句頌)을 대부분 그냥 은근슬적 엉터리로 본 사람이 많습니다. 세속에서는 거문고 탄자와 듣는 자 둘이 나오지 않습니까? 백아의 곡조를 종자기가 알아들었으니, 둘은 둘이되 하나가 된 것입니다. 백아의 마음을 종자기가 알아들었으니, 백아 마음이 종자기 마음과 하나로 된 것이다.

이 경지까지 가는 것이 달인의 경지입니다. 탄자 문자(彈者 聞者)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세속사로 보면 명인 달인은 대단한 것이지만 선문(禪門)에서는 그것도 아직 덜된 경지로 본 것입니다.

선문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아닙니까? 말이 필요 없죠. 목격전도(目擊傳道)이니까요. 눈으로 척 보면 압니다. 척 하면 척 해야지! 말할 필요 없다는 것이 하필고순아(何必鼓脣牙)입니다. 어찌 입술과 이를 두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자내증(自內證)이다.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말로 전해 줄 수 없는 것이 도(道)아닙니까? 이렇게 선사(禪師)들의 언어(言語)는 뜻이 깊습니다. 삼매(三昧)의 체로 걸러진 언어(言語)라 그렇습니다.

선어(禪語)는 농축된 언어이다. 삼매는 자성(自性) 반조(返照)입니다. 길든 소타고 가는 목동이 되어 보십시오. 말 나누고자 하나 나와 함께 어울릴 이 없네!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 에게 권하노니, 취중에 아취를 혼자 얻으면 그만 이지 굳이 깨어 있는 자에게 전하지 말게 나! 종자기 이미 가고 말았으니 이젠 세상에 음악 아는 이 하나 없구나! 나를 아는 자 하나 없지만 그러나 그뿐 인걸 어찌 할꼬 이 슬픔을!
欲言無予和 揮盃勸孤影
但得醉中趣 勿爲醒者傳
鍾期久已沒 世上無知音
知音何不存 已矣何所悲
지음지우(知音知友)를 잃고 난 후 백아(伯牙)의 마음이 녹아 있는 시(詩)라 옮겨 봤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지심지우(知心之友)를 만난 것도 복중에 복이 아닐까요? 애틋함이 묻어나는 시(詩)라 좋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특별시 광진구 용마산로128 원방빌딩 501호(중곡동)
  • 대표전화 : 02-2294-7322
  • 팩스 : 02-2294-732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연
  • 법인명 : 성광미디어(주)
  • 제호 : 성광일보
  • 등록번호 : 서울 아 01336
  • 등록일 : 2010-09-01
  • 발행일 : 2010-09-01
  • 발행인 : 이원주
  • 편집인 : 이원주
  • 회장 : 조연만
  • 편집이사 : 김광부
  • 논설주간 : 김정숙
  • 자매지 : 성동신문·광진투데이
  • 통신판매 등록 번 제2018-서울광진-1174호
  • 성광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성광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gilbo@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