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④ 수신비(水神碑)
<서성원의 엉뚱 발랄 성동 이야기> ④ 수신비(水神碑)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0.07.28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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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겨 둔 일제의 역사 왜곡

○소재지: 서울시 성동구 송정동 72-22 (송정마을마당)

숨어있는 수신비(水神碑)

비 옆면에 대정14년4월초 동척경성지점(大正十四年四月初, 東拓京城支店)이라고 적혀있다. 서성원 ⓒ
비 옆면에 대정14년4월초 동척경성지점(大正十四年四月初, 東拓京城支店)이라고 적혀있다. 서성원 ⓒ

2020년 유월, 수신비(水神碑)를 찾아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비 내리는 날, 수신비를 만나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 송정동에 갔다. 아, 이런, 비가 없다. 주민들에게 물어도 모른단다. 이럴 수가. 그냥 돌아왔다. 

2010년에 수신비를 블로그에 올린 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동문화원 홈페이지는 없는 유물을 올려놨단 말인가. 며칠 후, 위성사진을 보았다. 있을 만한 장소를 발견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송정마을마당에서 찾아냈다. 찰칵찰칵. 
그리고 7월에 다시 찾았다. 동네 분들을 만나보려고. 마을 제사를 언제까지 지냈는가. 1925년 홍수가 어땠는가. 수신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가. 왜 숨어있는가. 왜 송정동에만 있는가. 일본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왜 수신비를 세웠는가. 마지막 질문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여기에 답하는 분을 만나지 못했다.

현재 송정마을 앞 중랑천과 마을 정자, 서성원
현재 송정마을 앞 중랑천과 마을 정자, 서성원

마을 제사를 일으킨 버들꽃 처녀

그림 정운조 : https://www.instagram.com/drawingsnoopy
그림 정운조 : https://www.instagram.com/drawingsnoopy

조선시대, 한양 도성 밖 동쪽에 한천(중랑천)이 있었다. 시내는 북쪽 의정부쪽에서 남으로 흘러 한강과 만났다. 한강과 만나기 십 리 전쯤에 송정마을이 있었다. 

그 시냇가 마을은 가난했다. 동제를 시원찮게 지내는 탓이라고 했다. 넘쳐 들어오는 강물에 논밭이 잠기곤 해서 농사도 쉽지 않았다. 
그 당시엔 농촌이라면 서낭당에서, 어촌은 해랑당, 산촌은 산신당에서 마을 제사를 지냈다. 마을 수호신에게 풍년,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해, 송정마을에 어떤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마을 원로를 찾아서 마을 제사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 해 시월 상달, 처녀는 떡과 술을 가져왔다. 떡에는 버들잎이 한 장씩 붙어있고, 술병에는 삼족오가 날고 있었다. 노인이 이름과 사는 곳을 물었다.
“버들꽃이라 하옵니다. 아차산 너머 구려마을에 삽니다.”

노인이 송정에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물었다. 버들꽃 처녀는 한참 말없이 앉아 있더니 마을에서 멀리 보이는 한천을 가리켰다. 노인은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면 그곳에서 좋지 않은 일로 물귀신들이 되곤 했었다. 
“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버들꽃 처녀가 말을 이어갔다. 
“고구려에서는 수도 동쪽 시내에서 나라에서 큰 제사를 지냈습니다. 수신(隧神)이라고 합죠. 그런데 조선은 고구려 풍속을 씻어내려 하죠. 조선은 고려가 아니다, 라고. 동네 제사 때 지위에 수신(隧神)이라고만 적어주세요. 대신에 약속은 지켜주세요. 저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약속을 어기면 도움을 줄 수 없어요.”

그 후에 버들꽃 처녀는 제사용 논을 동네에 기부했다. 그리고 수신(隧神)이라고 적힌 비석도 기증했다. 송정의 마을 제사는 풍성했다. 제사 후에 신나는 축제가 벌어졌다. 다른 마을에서 구경 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마을 원로가 죽은 뒤, 버들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버들꽃 처녀는 고구려 유화의 화신이었다.

수신(隧神)과 수신(水神)
1925년 늦가을, 송정마을 사람들은 침울했다. 10월이 다가오는데 제물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10월 초하루가 마을 제삿날이었다. 버들꽃이 기부했던 젯논(제사답:祭司沓)이 7월 대홍수에 유실된 것이다. 수신비(隧神碑)도 사라지고 말았다.

1925년 7월 16일~18일까지 한강과 임진강 유역에 650㎜가 내렸다. 한강이 범람했다. 18일 한강 수위는 뚝섬 13.59m, 인도교 11.66m, 사상 최고기록이었다. 영등포· 용산의 제방이 넘쳐 강변 일대 3만여 정보의 땅이 침수되어 망망한 진흙 바다를 이루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은 뚝섬·송파·잠실리·신천리·풍납리·동부이촌동 등이었다. 

작가 서성원
작가 서성원

그렇게 시름에 잠겨 있는 송정마을에 일본인이 찾아왔다. 그가 노인회장에게 말했다.
“올해 여름에 물난리 날 것, 우리는 알았어무니다. 비석도 준비했어무니다.”

일본인을 따라간 노인회장은 그들이 준비했었다는 비석을 보았다. 그 비를 송정마을에 세우면 제사 비용을 대어 주겠다고 했다. 노인회장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마을 사람들 귀에 이런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홍수에 가족을 잃은 이들이 나섰다.
“물난리를 막아야죠. 수신(水神)에게 빌어야 해요.”
울면서 하소연했다.

동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려. 비석 글씨가 옛날 것하고 다른 건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제사는 지냅시다.”
일본은 홍수가 난 것을 이용해서 고구려의 나라 제사 수신(隧神)을 없애고 수신(水神)으로 바꾸고 말았다. 그것이 송정동 수신(水神)이지 않을까.

1921년 뚝섬 지도, 야마다 농장 등이 보인다. 일본인들이 많은 땅을 차지했다는 증거. 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인쇄하면 글씨가 안보이겠지요?
1921년 뚝섬 지도, 야마다 농장 등이 보인다. 일본인들이 많은 땅을 차지했다는 증거. 출처:성동역사문화연구회-인쇄하면 글씨가 안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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