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聽)을 들으니 성(聖)이 따라 온다!
청(聽)을 들으니 성(聖)이 따라 온다!
  • 성광일보
  • 승인 2020.11.2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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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 / 성동신문 논설위원
송란교
송란교

흔히 '들을 청(聽)'은 귀 이(耳) + 임금 왕(王) 또는 천간의 임(壬) + 열 십(十) + 눈 목(目) 또는 그물 망(罔) + 한 일(一) + 마음 심(心)이라는 6개 한자의 조합이라 말하고, 성스러울 성(聖)은 귀 이(耳) + 입 구(口) + 임금 왕(王) 또는 천간의 임(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남의 말을 들을 때 집중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커다란 왕 같은 귀가 필요한 것일까? 마음의 눈으로 상대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아차려야 하고 그의 표정이나 눈빛, 태도 등도 열 개의 눈으로 살피듯 잘 들으라는 뜻일까? 아니면 촘촘한 그물로 잘 가두고 거두어들이라는 것일까?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한 마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진 임금의 가장 큰 덕목은 큰 귀와 밝은 눈으로 신하들의 말과 몸짓을 잘 듣고 살펴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얻는 지혜인 것이다. 

속도, 접촉(정보수집), 용량이 중시되는 5G가 상용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오밀조밀 숨어 있는 CCTV들이 핸드폰의 흔들림조차 매의 눈으로 살피고, 말미잘 같이 여러 갈래의 촉수들을 촘촘하게 펼쳐놓고 엄지손가락의 꼼지락거림을 24시간 느끼려하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미적거리는 나의 마음조차 읽어내려 한다. 이런 기계들조차 나의 생각과 행동에 치열한 관심을 갖고 제2의 '나'를 만들어 내려고 쉼 없는 경쟁을 하고 있다. 

정보는 관심에서 나온다. 그 핵심 정보는 곧 돈이 되는 세상이다. 상대가 하는 말도 소중한 정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에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참을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또한 상대의 말에 아무 때나 순번 무시하며 끼어들고, 불쑥 자르고, 오해를 부르는 앞지르기, 무시하며 대꾸 안하기, 나만 아는 어려운 단어 쓰기 등의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경청 대신 내 말, 내 입장, 내 주장만 외치는데 1등이다. 더욱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오히려 화를 낸다. 자만과 독선 그릇된 아집이 기저에 깔려 있다. 너는 들어야만 하고 나만 떠들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차고 넘친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면 돈을 내야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나의 말을 경청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잭우드포드는 '말을 귀담아듣는 자를 꺼리는 자는 없다'라고 말했었다. 공자(孔子)도 60세가 되어서야 '이순'(耳順)의 경지에 도달했다. 말하는 사람만 존재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정성들여 했던 나의 말들이 허공에 뱉어진 한갓 바람소리에 불과한 것이 될 뿐이다. 

聽은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이 아니라 닫힌 문틈으로 소리가 들려온다는 문(聞)과는 다르다. 영어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듣느냐에 따라 Listen과 Hear로 구분한다. 이것은 몸을 기울여 가며 듣는 '경청'과 멍하게 듣는 '멍청'의 차이라 할 수 있을까? 

음악(音樂)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악성(樂聖), 바둑에서는 기성(棋聖), 시(詩)에서는 시성(詩聖)이라 한다. 또한 최고의 성공 경지에 오른 사람을 우리들은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聽과 聖에서 귀(耳)를 맨 먼저 쓰는 이유는 남의 마음을 얻고자 하면 듣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뜻일 게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마음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명심하자. 상대의 말이 귀에 잘 안 들리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내가 좀 더 나를 내려놓고, 상대가 외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상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함께 바라봐야 세상이 환하고 이웃이 편안한 아름다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몸을 구부려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 나의 신분이 낮아지는가?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 머리가 셀 때까지 오랫동안 사귀어도 서로 상대방의 才能(재능)을 理解(이해)하지 못하면 새로 사귄 벗과 조금도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마음이 통하면 길에서 처음 만나 인사하여도 오랜 친구와 같다)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먼저 낮추고 기울이면 우리는 모두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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