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동네】 시민들의 역사참여 《만화 일곱 시》 출간의 1년을 따라가다
【책이 있는 동네】 시민들의 역사참여 《만화 일곱 시》 출간의 1년을 따라가다
  • 원동업 기자
  • 승인 2021.12.30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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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처럼, 베트남전 데치면 초록물을 흘린 뒤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다룬 시민작가들 만화 《일곱 시》 출간 및 간담회

책은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태어나는가? 지난 12월 26일 출간기념회를 한 책 [<일곱시>-부제 www.about베트남.war]를 손에 넣었다. 나는 저자로 참여했다. 그러니 그 책의 여정을 되돌아보기에 적당한 사람이다. 거기에 두 개의 큰 축이 있었다. 우리 현대사의 큰 굽이이자 비극이기도 했던 베트남전 이야기가 한 축.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이 이야기에 뛰어들어 만화라는 매체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또 한 축을 이룬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므로, 우리는 지금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 권 책이 발간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깃든다. 뒷줄 왼편부터 고경일, 원동업, 김선영, 김민정, 최호철, 김소희, 유승하. 앞줄 왼편부터 구수정, 조수정, 여원, 김지연, 김현숙

지난해인 2020년 9월 15일, 당시엔 옥수동 독서당로에 위치했던 피스북스(2021년 12월 현재는 종로 누상동으로 이사) 홈페이지에 공고가 떴다. '피스북스 웹툰&만화출판학교' 1기 수강생 모집광고였다. “베트남전에 대한 대중창작물 제작, 확산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로 세우는 기획”이라고 했다. 르포타주 그림책 작가들과 실전에서 활약 중인 만화가들이 만화라는 형식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과 고경태(한겨레신문 기자) 그리고 이길보라 (영화 <기억의 전쟁>) 감독 등이 내용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11월 6일부터 21년 4월말까지 24주간의 강의, 2021년 4월 출판 예정이니, 배우면서 만들어가는, 아니 만들면서 배워가는 과정일 터였다. 가능할까?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는 법이니까!" 한번 해보기로 마음을 잡았다. 오리엔테이션날 만난 지원자들은 열 명이었다. 이중 두 사람이 우리가 다룰 '내용'을 본 뒤에 그날로 하차를 결정했다. 이 주제는 엄청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애초 목표는 수강자 모두가 자신의 단행본을 내는 것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일곱 명의 단편을 모아 출간했다. 겨우 등산학교를 졸업한 뒤에 오를 수 있는 건 작은 산, 거기가 우리에게 적합한 목표였던 것이다.  

작업은 종이에 펜을 거쳤다. 요즘 작업은 디지털로 이뤄진다.
만화는 세상의 창조다. 주제와 캐릭터의 선정, 디테일한 장면까지 작가의 손을 거친다.

선생들에게 베트남전의 내용과 만화의 형식을 전수받다

선생들의 면면은 내용을 형식과 결합해야 하는 우리 프로젝트를 십분 이해하는 이들이었다. 구수정 선생 자신이 베트남전의 충실한 '기록자'였다. 1999년 9월 <한겨레21>에 그의 첫 르뽀기사가 실린 뒤, 현재까지 베트남전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통계'는 구수정의 손을 거친 것들이 유일하다. 이는 물론 공적이고 체계적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못한 때문이지만, 구수정 선생의 온몸을 던진 이야기는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바탕힘이 됐다. 

그 자신이 잡지 <한겨레21>의 편집장이었던 고경태 기자는 현실을 이야기로, 글을 책으로 만드는 기획자이기도 했다. 그의 저서 <굿바이 편집장> <유혹하는 에디터> 같은 책들은 초보편집자가 쌩으로, 온몸으로 카피와 편집(결국 우리는 사실을 편집해 이야기로 에디팅해 책을 낼 사람들이었으므로)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경험들도 우리에게 도움이 됐다. 물론 그가 이야기해준 베트남전의 깊고 다양한 르포기사들도 수강생들의 영감을 자극하고, 실질적 자양분들을 제공했고….    

그림선생으로 나서줬던 유승하 최호철 두 만화가는 부부다. 유승하 작가는 인권을 다룬 만화 작품집 <십시일반>을 그렸고, 두 번째 책 <사이시옷> <어깨동무>에도 참여했다. 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작품집을 낸 그 모델을 본 삼아 우리 작품도 공동작품집이 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록했던 이 책처럼, 우리의 작품이 여기 한국베트남평화재단 내 피스북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특강 정도로 한정될 계획이었던 최호철 작가는 나중에 고경일 작가와 더불어 각 반의 '담임'이 됐다. 지독하게 성실한 이 화가이자 만화가의 태도 역시 예비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만화 <태일이>를 그렸던 최호철 작가(유승하 작가도 만화로 그린 민주화 운동 단행본 <1987 그날>을 그렸다)는 프로 만화가가 갖는 디테일들과 자산들도 남김없이 공유해 주었다. 

상명대에서 만화애니메이션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자 작가인 고경일은 2020년 초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 만화집 <붉은돌단풍>을 출간했다.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만화 혹은 웹툰 혹은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키워내고 있는 고선생의 수업은 소나기처럼 내렸다. 그 이야기들은 콩나물 시루를 흐르는 물처럼 빠져나간다고 느껴졌겠지만, 이론적 토대가 확실한 이의 조언은 오랜 동안 지침이 되는 법. 어떠한 이야기에라도 기승전결을 만들어보고, 작은 이야기를 24개의 블록에 만들어 갈등을 극화해 보는 수업은 작업 내내 초보자들을 활동케 한 원천의 자양이 됐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를 통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차근차근 접근해 들어간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 상영과 대담도 과정 중에 있었다. 작품을 함께 했던 조소나, 서새롬, 곽소진, 신원제 편집자 등의 공저에 나타난 여러 시선들 역시 이후 작품의 제목을 짓는 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시민작가들이 이번에 만들어낸 작품집 <일곱 시>는 일곱 명 작가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11월 26일 <일곱 시> 출판기념회 포스터

편집과정은 퇴고의 과정이기도, 퇴고는 제2의 창작의 시간

코로나19 시대라 우리들은 현장에, 그러니까 그 학살이 생겼던 장소인 베트남에 가보지는 못했다.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한국군과의 인터뷰도 결국은 실패했다. 베트남전에 참여하기전 우리 군대가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장소 강원군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 있는 옛 베트남 파병군 훈련장도 가보지 못했다. 우리는 장군들과 소대장들과 병사의 수기를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전쟁을 기념하고 있는 곳 용산 전쟁기념관을 통해 한국군의 파병사 한쪽에서 베트남전을 접했을 뿐이었다. 

담임 작가들과 몇 번의 만남을 진행하며 가진 개인 작품의 수정을 넘어 1차 초고가 완성되었다. 그것을 최종적인 책한권으로 출판하기까지 다시 편집 작업이 진행되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과정들을 함께 지켜준 진행자 조승연의 수고가 컸다. 작품 초고는 경험 많은 에디터 김현숙 선생이 꼼꼼하게 다시 편집해 들어갔다. 그건 퇴고의 과정이기도 했다. 글의 흐름 중 어색한 부분이 잡혔다. 오탈자를 꼽아 수정하고, 전체적 내용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현재의 내용이 혹시나 진실과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지 점검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더군다나 작가로 참여한 김소희(피스북스 대표) 님도 거기 함께였다. 

  책이 출간된 것은 첫 수업이 진행됐던 2020년 11월 6일에서 1년하고도 20일이 더 지난 11월 26일이었다. 385일의 기간 동안 예비작가들은 이전에 자신이 했던 일들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었다. 주부는 주부, 직장인은 여전히 직장인이었다. 이날 이후 이들은 '작가'가 되었을까? 그것은 오직 이들이 이후에 작품을 작(만들 作)하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일 터다. 

책 만들기는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비로소 완결된다. 수요낭독모임 처음처럼 회원들과 시민작가들. 뒷줄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수현, 최영경, 한윤정, 안신영, 원동업, 김선영, 조수정, 김지연

책의 완결자는 독자들, 독자들과 만난 시민작가들

지난 12월 19일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금호동에 위치한 책읽는엄마 책읽는아이 2층 마을문화카페 산책에서 열렸다. 이곳에서 둥지를 틀고 오랜 동안 책을 낭독해온 모임 '처음처럼'이 이들 작가들을 초대했다. 책 <일곱 시>를 공동구매하고, 사전에 모두 책을 읽은 뒤, 작가들을 만난 것이다. 시카고에서 있었던 책운동 '한 책 읽기'의 서울 성동구 버전이었다. 우리에게 베트남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시민들에게 글쓰기 혹은 책만들기란 무엇인지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책의 최종 완결자인 독자들과 만난 시민작가들의 목소리를 옮겨본다. 

◇조수정: 평범한 직장인이다. 베트남전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세월호 이후에 큰 각성이 왔고, 질문이 계속 됐다. 왜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생기는가? 그 과정에서 '르뽀르타주'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출판학교 광고에 그 이야기가 있었다. 남편 고향이 제주다. 우리가 제주를 관광지로 대개 알 듯 베트남 역시 그랬다. 48년에 4.3이 제주서 있었고, 20년 뒤 베트남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알고싶어 시작을 했고, 시작이 되자 차츰차츰 뿌리를 뻗어서 여기까지 왔다. 원래 내 이야기는 '스무 명의 스무 살'이었다. 워낙 방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마냥 덜어내야 했고, 더구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 <피어나지 못한 청춘>이 돼 책에 실렸다. 전쟁으로 죽어간 태아들, 젊음을 누리지 못한 생명들, 나라에 버림받고, 감옥에 갔던 청년들 모두가 전쟁의 희생자들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김선영 : 내 관심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이었다. 다만 그걸 책으로 엮어내기까지는 어려웠다. 내 역량이, 내 그릇이 이야기를 담기에 충분한가에 대한 의심이 계속 있었다. 다만 끝까지 가게 됐다. '멱살 잡혀가며' '밀려가며 끌려가며' 작업을 마친 건 친구 동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린 만화의 제목은 <눈빛>이다. 증오와 원망의 눈빛이고, 우리는 이 비극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지연 : 우연히 작업실을 한베평화재단과 (함께 공간에 있던) 피스북스 한 켠에 얻게 됐다. 2년여간 있었으니, 평화에 대한 주제가 자연스레 내게 스미고, 노출됐다. 그 이전까지 내게 평화는 추상적 세계이기만 했지. 출판학교가 시작될 때, <아기 포로> 작업을 하고 있어서 참여를 거부해었다. 하게 된 건, 내게 손을 내밀어준 김소희 대표의 손 때문이다. 내가 내 첫 작품 <부적>을 할 때, “너는 고정궁 별자리야. 넓어지려면 누가 손내밀거든 잡아!”라고 무당들께서 그랬었거든. 저는 여기 한국에 계신 베트남 엄마들이 자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작품이었으면 했다. 베트남의 여성신화로부터 <어우 꺼의 선물>이 나왔다.

몇 가지 덧붙이고 싶다, 작품을 낸 뒤에는 세계관의 확장이 있다. 시민참여 글쓰기의 의의랄 만하다. 세계사 기술에서 한국의 베트남 참전은 별다른 의미를 안 둔다. 베트남 역시 우리는 그저 미국의 용병 정도로 치부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객관적 조명이, 우리 안에서의 탐구가 먼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선 베트남 참전군인들에 의한 평화운동이 일어났고, 그 전쟁을 새롭게 보고 있다. 새살이 돋고 (이것이 길이 되려면) 군인들 스스로 움직이고 발언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도 시급한 평화운동이라 생각한다. 이 전쟁을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보는 시선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시금치를 보라. 새파란 시금치는 끓는 물에 빠르게 데쳐내야 한다. 그건 죽는 거다. 그걸 꽉 짜면 녹색물이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시민들이 그린 그림은 일종의 뜨거운 물이다. 뜨거운 물을 거친 시금치는, 우리들에게 영양을 주는 시금치로 새롭게 태어날 거다.
<원동업 성수동쓰다 편집장>
iskar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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