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과 뮤즈 / 글 서울숲
헤드폰과 뮤즈 / 글 서울숲
  • 서성원 기자
  • 승인 2022.02.22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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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 최제희<br>
dream / 최제희

우리는 동네 길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헤드폰을 낀 그녀가 우리 곁을 지나갔다.
“야야, 헤드폰 멋지지 않냐. 느그들 손대지 마라, 임마.”

친구 하나가 책가방을 멘 채, 이렇게 씨부렁거렸다. 우리 중에는 그녀 이름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헤드폰’이라 불렀다. 마주칠 때면, 늘 헤드폰을 끼고 다녔기 때문이다.

대학 첫해, 교양과목이 많았다. 교양과목 시간에 그 헤드폰을 만났다. 강의 시간을 빼곤 역시 헤드폰을 끼고 있어 금방 알아봤고 반가워서 인사까지 나눴다.
“난 이것만 있으면 돼.”

헤드폰은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내 심장이 마구 뛰었고 웃음이 절로 났다. 그게 사랑이었다. 헤드폰은 나의 뮤즈가 되었다.

뮤즈는 노래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노래 하나 만나면, 난 일주일은 행복해. 딴 건 필요 없어.”

어느 정도로 좋아할까. 때로는 잠자지 않고 밤을 꼬박 새워서 헤드폰을 낀다. 그리고 세상 행복한 얼굴이다. 문제는 슬픈 노래다. 몇 날 며칠, 눈물 바람이다. 이럴 땐 먹는 것도 대충이다. 노래에 젖어서 슬프기 때문이다.

뮤즈는 자기가 찾은 노래를 기록한다. 가수, 곡명, 연월일로. 이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다.

좋아하는 음악을 찾게 되면 모든 게 멈춰진다. 스톱.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뮤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뮤즈는 음악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알프스 산골 마을을 날아다닌다. 장난감 같은 집들을 내려다보니 행복하다. 물속을 걸어 본다. 부력으로 몸이 가벼워서 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다 향기가 나는 곳에 발길이 닿는다. 아늑하다. 나른하게 잠이 쏟아진다. 향기에 취해 풋잠을 잔다. 촉촉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떴더니, 꽃술 속에 누워있었고, 이슬비가 내린다. 촉촉한 손등을 비비는데 나비가 손짓한다. 날개 위에 타라고. 달빛이 흐르는 시냇가로 내려가서 내린다. 냇가에 앉아서 시냇물 소리를 듣는다. 그곳에서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음악이 있으면 뮤즈는 그걸로 끝이다. 행복하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나는 그런 뮤즈와 살고 있다. 

 

최제희 작가
♤ 프리랜스 일러스트레이터 ♤재밌는 생각으로 행복과 밝은 에너지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 연무장길에서 <티티팩토리>를 열고 활동하고 있음. ♤ titijehee@naver.com

 

 

 

 

 

서울숲 작가
○ 글 쓰고 사진 찍는 작가 ○ ‘울숲’은 동네 울타리가 되는 숲을 말하는데 성수동 동네 사람으로 살고 있음. ○ in.seoulsu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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