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성석(刻字城石)과 문패(門牌)
각자성석(刻字城石)과 문패(門牌)
  • 성광일보
  • 승인 2022.06.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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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논설위원

서울에 있는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도심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오랫동안(1396~1910)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 대문과 4 소문을 두었다. 4 대문은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숙정문 · 흥인지문 · 숭례문 · 돈의문이며, 4 소문은 서북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 혜화문 · 광희문 · 소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축성(築城)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 한다. 한양도성에는 천자문의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14C),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18C) 등의 성돌이 280개 정도 전해지고 있다. 세종 때 성벽을 쌓은 지방의 이름을 새겨두었다가 성벽이 무너지면 그 지역 사람들로 하여 다시 쌓게 했다고 한다. (한양도성 웹사이트 참조)

이름을 어딘가에 새기는 것은 ‘명예로운 이름’을 알리는 것이기도 하나 그만큼 그 명예에 걸맞은 책임도 따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의 흔적을 어디엔가 기록하고서 그 흔적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사유명 호사유피(人死留名 虎死留皮)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명예로운 이름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칭송되고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지기도 한다. 저주와 야유가 붙는 이름이라면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지워지기를 원할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큰 바윗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엉뚱한 이름만을 새겨놓고서 자신의 이름이 후세에 오랫동안 전해질 거라는 믿음에 마음껏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가는 바람도 드러눕는 풀을 통해 흔적을 남기고, 흘러가는 구름도 그림자를 통해 지나간 궤적을 남긴다. 누리호 위성도 상호교신을 통해 정상궤도임을 확인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도 마주치는 눈빛 속에 이름을 남긴다. 그렇게 남긴 흔적이나 궤적이나 이름들이 후세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며, 얼마나 값어치가 있을 것인가?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이름을 여기저기 새겨놓고서 나를 기억하라 말하는 것은 지나가는 들개들이 전봇대에 오줌을 갈겨대고는 모두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과 무에 다를까?

서산대사는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시를 통해 자신이 남긴 흔적은 반드시 후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의 이름을 족보(族譜)와 호적에 올린다. 학교에 가면 학적부에, 회사에 취업하면 사원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물건을 매매하더라도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름과 떼어질 수 없다. 그 이름과 함께 자신이 어떻게 행하였는지, 어떤 말을 하였는지도 빼곡하게 기록이 되고 있다. 요즘에는 아무도 모르게 돌아다닌 흔적도 자신도 모르게 감시되고 기록되고 있다. 그것들은 값비싼 정보가 되어 여기저기 팔리고 있다. 항시 몸에 달고 다니는 핸드폰은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아닌 육장육부가 된 지 오래다. 핸드폰에는 24시간 나를 감시하는 고성능 탐지기가 부착되어 있다. 그래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사람에게 무한대로 공개되고 있으니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혼자 있을 때조차도 근신해야 한다.

한양 도성길을 따라 길게 누워있는 성석을 바라본다. 지금까지는 그저 그런 성석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각자성석이 눈에 들어왔다. 번개가 스치듯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했다. 혹여 삐뚤삐뚤 걸어오면서 나를 보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걸으라 흔적을 남기고 오지는 않았는가? 내 뒤통수에 새겨진 이름 석자에 묵직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명예와 책임을 생각하면서 걷는 자세를 똑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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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신 2022-06-27 17:07:41
비오는 오후에 커피 한 잔 그리고 좋은 글과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가끔씩 거닐었던 한양도성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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