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 성광일보
  • 승인 2022.08.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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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란교/논설위원
송란교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는 500미터쯤 떨어져 있다. 해가 저물어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을 정리하고 나와서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지하철역에서 카드가 들어 있는 지갑을 꺼내려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갑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다른 지인을 만나 밥값을 결제하려고 지갑을 꺼낸 후 호주머니에 잘 넣었다는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20 구간의 지하철역을 지나오면서 졸기는 했지만, 분명한 것은 역에서 나올 때 카드를 찍고 나왔기에 그때까지는 분명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지갑 안에는 교통카드는 물론 신용카드와 보안카드, 주민등록증 그리고 휴가비로 챙겨둔 현금도 제법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또 잘 사용하지 않는 다른 카드도 몇 장 더 들어 있었다. 지하철을 탈 수 없기에 지하철역에서 사무실로 되돌아 왔다. 찌는 듯한 무더위 탓에 노트북이 들어 있는 백 팩은 완전군장 배낭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어디에 떨어뜨렸을까? 마음씨 고운 사람이 주웠다면 현금은 차치하고 카드는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희망을 믿어보았다. 오후에 일어난 상황을 이동한 시간대별로 가늠해 보면서도 지갑은 사무실에 꼭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저런 불길한 생각을 하면 그 꼬리가 길어진 만큼 주름만 늘고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허겁지겁 뛰다시피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이때까지도 나의 머리카락은 고슴도치를 닮아 있었다.

맨 처음 작업했던 출입구 쪽 의자 주위를 삐리릭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탕비실과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보았다. 여기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이를 어쩌나. 정말 다른 곳에 떨어뜨렸나 보네 하면서, 마지막으로 작업을 했던 창가 쪽으로 가보았다. 여기에도 없으면 카드사에 분실신고를 해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쏜살같이 눈동자를 굴려보았지만, 책상 위에는 하얀 복사용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포자기(自暴自棄) 심정으로 의자에 앉아 지갑이 빠질만한 자세로 컴퓨터를 만지작거려 보았다. 의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의자 밑을 슬쩍 훑어보았다. 아니 이게 웬 복이란 말인가. 글쎄 의자 바퀴에 밀려 책상 서랍장 밑으로 절반쯤 들어가 있는 지갑이 보였다. 도마뱀이 꼬리를 살짝 보여주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럼 그렇지, 점심 대접을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고 왔는데 그 복이 어디 다른 데로 달아났겠는가.

엉뚱한 곳에 흘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구나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 개의 바람이 앗아간 텅 빈 마음을 만개의 바람이 일어 수만 개의 충만한 마음으로 되돌려 받는다’라는 문장으로 소식지의 원고를 마무리하였는데, 복이 넘치는 즐거운 마음을 되돌려 받은 느낌이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그 복이 머물러 있으니 참으로 고마웠다.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할 물건은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엉망이 된다. 어떤 민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마침 그 자리에 없다. 그러면 사방팔방으로 인맥을 뒤적인다. 조금이라도 끈이 닿는 사람을 현미경을 들이대며 찾아낸다. 그래도 힘이 모자라거나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왜 이때 내가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없는 거야 하면서 한숨 소리만 높아간다.

가격이 바닥을 쳐서 그 물건을 사야 하는데 왜 지금 현금이 바닥이란 말인가.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 전문가는 왜 이때 휴가를 가고 수술실에 없단 말인가. 잘못한 학생들에게 따끔하게 훈계하고 나무라야 하는데 왜 이때 지도하는 선생님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가. 잘못한 정치인을 꾸짖고 정도(正道)를 걷게 만들어야 하는데 왜 이때 아주 바른 소리를 해주는 믿음직한 어른이 보이지 않는가. 지금 꼭 필요한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꼭 필요할 때 나타나면 만고의 의인이 될 터인데...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마음에 불안하고 걱정이 앞섰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말을 해주고 꼭 필요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꼭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실망할 것 없다. 두툼한 지갑을 잃은 사람은 지갑을 찾으려 그 자리에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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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신 2022-08-05 12:03:16
좋은 글 읽으며 잘 쉬었다 갑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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